 |  | | | ↑↑ 송태규 시인·교육학 박사 | | ⓒ 익산신문 |
잠자리를 박차고 나선 새벽 운동길. 어느 순간 볼에 달라붙는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갖은 풀벌레가 저만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희부연 사위의 어둠 속을 달리면서 어제 쓴 글을 떠올리고 그물코를 다듬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참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개근하는 분들이 있다. 나처럼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젊은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들, 다정하게 손잡고 행복을 뽐내는 노부부, 절뚝이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나이 지긋한 아들, 거의 매일 마주치는 이웃이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때마다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데면데면하던 분들이 이제는 먼저 손을 흔들기도 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옅은 메아리를 남기기도 한다. 생은 이렇듯 새로운 인연으로 수놓는 연속이다.
폭우와 불볕더위의 여름을 겪었다. 역대 급 찜통더위가 열대야 기록을 갈아치웠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지구 덩어리가 호되게 여름을 앓았다.
지구 열대화의 여파는 철인3종 대회에도 영향을 끼친다. 수영장인 금강 줄기가 아예 ‘녹차 라테’가 되었다.
참가자들의 건강을 염려해 수영 종목을 취소하고 대신 5km 마라톤을 추가하는 듀애슬론으로 방식을 바꾼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후 위기의 여파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대회를 마친 지 엊그제 같은데 받아 놓은 날은 없는 집 제삿날 오듯 잘도 다가왔다. 새벽을 설치면서 대회장으로 갔다. 지난 대회 4주 만이다. 금강을 끼고 철인3종 경기장이 펼쳐져 있다.
대회에 맞춰 내로라하는 전국의 철인들이 해마다 우리 고장을 찾아온다. 그래서 감회가 남다르다. 출발선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자기들끼리 익산은 이런 대회장이 있어서 부럽다고 했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곁에서 말을 거들며 어깨가 으쓱했다. 내가 익산철인이라고.
누가 가을이라고 했나. 9월 1일은 눈 시퍼렇게 부라린 한여름이었다. 강둑을 달리는데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그 길에서 무더위에 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고 무사히 완주했다. 저만치 앞서 달리는 사람을 잡으려다 보면 마음만 급하다.
결국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내 부족함을 인정한다. 대신 뒤에서 내 발자국을 밟고 오는 사람을 생각하며 위안 삼는다. 그도 나를 부러워할까.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쪼그라드는 그믐달보다 차오르는 보름달이 된다.
대회 시작을 알리기 전까지 가슴이 왜 그리 두근거리던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넘을 때면 마치 내가 세상을 품은 듯 홀가분해진다. 힘들게 삶의 마디 하나를 장만했다는 대견함을 느끼려는 순간 그 기분을 표현할 내 글 솜씨가 어쭙잖아 안타까울 뿐이다.
철인3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이유를 말하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날렵한 수영 슈트의 사진발도 좋다. 내리막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가르는 사이클은 ‘엄지척’이다.
마라톤을 마무리하며 결승선을 밟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서운하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 가지를 간이 잘 맞게 버무릴 수 있는 내 인내심에 후한 점수를 준다.
운동을 마치고 쏟아지는 땀을 바라보는 일은 내 삶의 ‘여전한 봄’을 푸지게 즐기는 순간이다.
여름의 끝물이다. 광채를 뿌리던 플라타너스 신록도 어느덧 뒤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방향과 속도는 다르지만 모두 주어진 자리에서 삶의 매듭을 묶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선선해진 바람을 따라 들판을 달리자. 그 속에서 여물어가는 가을 소리에 귀 세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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