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교육학 박사 | | ⓒ 익산신문 |
나는 멈출 수 없다. 언제든, 어디서든 달려야 한다. 틈만 나면 아니 틈을 만들어 운동화 끈을 조인다.
지난 3월 서울 국제마라톤 풀코스, 4월 진안 트레일 레이스 20km를 완주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았다. 다른 대회도 많았지만, 이러구러 놓치고 말았다. 6월 30일 창원에서 열린 철인3종 대회에 다녀왔다. 올 첫 번째 철인대회 출전이었다.
대회 하루 전, 출발하는데 장마에 강풍 주의보가 내렸다.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폭우 속에 세 시간 이상을 달렸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한 끼 때울 식당을 찾아 나섰다.
투박한 빗방울이 우산을 뚫고 머리를 적셨다. 이럴 때 일기 예보는 틀리지 않아서 탈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도로에 빗물이 흥건했다.
내일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할 그 길이다. 이대로라면 폭우 속에 대회를 치르기 쉽지 않겠다며 밤새 순해지길 바랐다.
조금 열어둔 숙소 창문 틈을 비집고 들랑거리는 강풍이 야수의 괴성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잔뜩 심란해졌다. 비는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내렸다.
새벽 한 시였다. 후배가 창문 닫는 소리에 달아난 잠 돌아오는 길을 잃고 상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런 운동을 그만두면 삶이 참 편안하고 여유가 있을 것 같다.
20년 이상 길바닥을 땀으로 적셨는데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것도 잠시. 나는 안다. 내가 나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궤도 벗어난 열차처럼 몸이 망가질 것을. 오늘 대회는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설핏 잠이 들었다.
마산만에서 수영을 마치면 그 일대가 대회장이다. 자전거와 달리기 코스가 평지다. 달리기는 틈나는 대로 준비했다. 자전거 훈련에 빈틈이 컸다. 다행히 평지라니 어지간하면 내 허벅지만 믿고 코스를 정복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아뿔싸. 대회장에 도착하자마자 안전이 우선이라며 자전거 종목은 취소했다니 아쉬운 맘 후련한 맘이 반반이었다.
오늘 숙제는 아쿠아슬론인 수영 1.5km, 달리기 10km다. 그나저나 이까짓 게 뭐라고 시작할 때가 되면 항상 몇 차례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막상 수영하러 바다에 몸을 담그면 돌아갈 길이 없으니 후련하다. 세 종목 가운데 그나마 내가 고갱이로 꼽는 것은 달리기이다.
2.5km를 남겨두고 어느 젊은이와 보폭을 맞추었다. 말을 건네지 않아도 서로 힘이 되는 길이다. 속도를 높였다. “2키로” 그가 짧게 말했다. “오케이” 내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호흡이 가쁠 때는 말하는 것도 아껴야 한다.
숨을 몰아쉬며 내가 훈련하던 코스를 떠올렸다. 어림잡아 남은 거리를 측정하는 나만의 셈법이다. 손목시계를 흘끗거리던 그가 외쳤다. “1500”. 이번에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고맙다는 표시다.
‘좋다. 500m만 함께 달리고 그를 먼저 보내야겠다. 젊은이와 속도를 맞추다간 내가 무리하게 된다.’ 그게 곁에서 끌어준 그의 성의에 보답하는 길이다. 드디어 “1000”. 저만치 급수대에서 목을 축이고 주춤하는데 앞서던 그가 나를 바라봤다.
남은 거리를 함께 가자는 눈빛이었다. 거역할 수 없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만치서 장내 아나운서 소리가 들렸다. 목표 500m 전방이다. 이번에는 그의 발걸음이 무겁다. 속도를 줄이면서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나요?” “서울이요.” “난 익산철인클럽입니다. 전라북도 익산.” “저는 지금 선생님 때문에 달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진즉 걸었을 거예요.” 그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뜻밖이었다. 실은 나도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맞장구쳤다. 결승선이 다가오자, 그가 나를 앞세웠다. 메달을 받을 입상권은 아니지만, 기꺼이 앞자리를 양보한 청년의 고마움에 가슴이 찡했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툼한 손을 잡고 함께 결승선을 넘자마자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마침, 내리던 폭우도 우리의 뜨거운 의리를 식히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선물처럼 주어진 스포츠의 매력을 그 청년에게서 배웠다. 내가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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