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유은미 호원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 | ⓒ 익산신문 |
최근에 큰 비로 인해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기고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문제는 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내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고루 내리던 비는 기후변화로 인해 스콜성 폭우로 점점 변해고 있다. 필자의 농장도 작년 폭우로 모든 작물을 잃어본 경험이 있어 그저 농가의 피해가 비켜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농민들에게는 요즘의 비는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침수된 상가 시설, 제조 시설 등 역시도 그들의 시름을 더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과거로부터 많은 것들이 변하고 또 변해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AI의 등장, 기후변화, 인구감소 등의 환경변화는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고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생활에 있어 빠른 정보 습득과 활용 능력, 환경 보존과 기후변화 대비, 줄어만 가는 인구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변화 등은 매우 복합적이면서 빠르게 우리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그 변화 속도는 너무도 빨라서 사실은 따라가기가 매우 버거운 현실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다양한 환경에서 경험하다 보니 바라는 것이 하나 생겼다. 그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균질한 삶에 대한 욕구 말이다.
앞만 보면 달리는 경주마 같은 삶을 지속하다 보면 언젠간 쓰러질 것이 자명하다. 언젠가는 멈춰야 할 때를 준비하며 지금은 그저 적당한 언덕에서 불어오는 평온한 바람 같은 삶을 살기 위해 격렬한 파도와 태풍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현재를 보내고 있다.
근래에 이러한 염원을 담은 말을 찾아 매번 되뇌는 습관이 생겼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조선경국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로 한자 그대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백제와 조선의 미(美)를 상징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으며, 그 말 안에 중용의 미학을 담고 있다.
고려 중기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온조왕의 궁궐 건축에 대해 ‘15년 봄 정월에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十五年, 春正月, 作新?室, 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경국전에서 정도전은 삼국사기의 위 기사를 인용하며 궁궐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잃는다. 너무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일 수 없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미(美)이다.
검소한 것은 덕과 같고, 사치스러운 것은 악(惡) 중에서도 큰 것이다. 사치스러운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다.(宮苑之制, 侈則必至勞民傷財. 陋則無以示尊嚴於朝廷也. 儉而不至於陋, 麗而不至於侈, 斯爲美矣. 然儉 德之共也, 侈 惡之大也. 與其侈也 寧儉.)’
이렇듯 고귀한 아름다움은 간결함에서 나오며 이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균형이 맞았을 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인간관계, 생활태도, 경제활동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에 우리의 삶은 아름다우며 평화로움을 찾아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빠른 변화에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고 삶이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바라는 것은 평온한 삶일 것이다.
미륵사지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 이러한 의미라면 매일 그 정기를 받고 있는 익산시민들이 ‘검이불루 화이불치’와 같은 화려하지 않지만 왜소하지도 않는 그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염원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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