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익산문화원장 이재호 | | ⓒ 익산신문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에 나오는 ‘나의 소원’ 중 일부다.
최근 JTBC 보도에 의하면 백범 김구의 공식 집무실로 추정되는 건물이 중국 충칭시 가락산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기와지붕으로 이뤄진 김구 공관을 자치구인 사핑바구는 ‘구급 문화보호단위‘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었다.
그동안 80년이 넘게 중국이 헐지 않고 보호해 준 덕에 귀한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문화유산은 지키고 보호하려는 후손의 관심과 정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
유서 깊은 우리 익산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는 물론 향토유적까지 포함하여 119건의 지정문화재가 등록되어 있다.
지정문화재는 예산지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체계적 관리를 받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비지정문화재들이다.
익산시 전역에 있는 문화유산을 발굴하기 위해 익산시는 150여 건의 대상물을 선정하고 문헌, 현장 조사를 하였고, 그 결과 보존 가치가 있는 귀한 유산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서동의 생가터에서 시작하여 향교나 서원과 정려각은 물론이고 오래된 가옥이나 종교시설, 쌀 창고, 상가 건물이나 석탑 등 많은 유산들이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이 중, 학교 건물이나 교회 건물 등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구체적으로 원광보건대학본관이나 이리 초등학교 구 교사, 구 농림고등학교 본관이나 구 금마면사무소, 함열성당, 이리중앙교회 등 익산시에서 오래 산 주민들이라면 모두 추억이 깃들고 미적 가치가 있는 귀한 생활공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행히 이런 구 건물들은 공공기관으로서 운영 주체들이 보존 가치를 느껴 헐어버리지 않았기에 오늘 우리 앞에 존재하지만, 구 가옥이나 상가 건물 등 지극히 개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산들은 상황이 다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헐려 영영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훼손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사유 재산 행사에 제한을 받는 개인에게 이 모두를 떠맡길 수도 없고 제한된 시 예산에 마냥 기댈 수도 없다.
그럼 어떻게 귀한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공공근로 사업을 이쪽으로 전환하여 시민들이 체계적으로 그 대상들을 관리 보존하는 일을 맡으면 어떨까 한다.
공공 근로나 노인 복지 사업 등 이미 시행하고 있는 사업의 내용을 바꾸어 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관리하는데 투입한다면, 근로의 내용만 달라질 뿐 큰 무리 없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우리 문화원에서도 관리 주체가 되어 도움을 줄 수 있다. 공공근로 부문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그때 그때 주어지는 시한부 일감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문화유산 지킴이가 되어 최전선에서 일한다는 보람과 책임도 느낄 수 있다.
최근에 기존 ‘문화재’란 법률·행정 용어가 ‘국가유산’으로 바뀌었다.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을 변경해 새로 출범했다. 문화재가 일본식 용어인데다 재화·물질적 성격이 강한 부분이 있었다는 지적에 의해서이다.
맞다. 문화재는 재화와 물질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 정동길을 걷다 보면 옛 신화일보 건물이나 예원 예술학교 등 문화유산들이 그 미적 가치를 보존한 채 카페나 학교 본관 건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그래서 서울 정동길은 노래에 나올 만큼 아름답다.
유산은 지역사회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쓱 보고 지나치는 구경거리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문화유산은 지금을 사는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생활하는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