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비극은 부모님을 여의고, 자식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낼 때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천붕(天崩)이라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고 해서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한다.
부모님이 먼저 세상을 등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지만 그 슬픔이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필자는 24년 전 아버지의 상을 당하고서 천붕을 실감했었다. 그리고 4년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짐을 느꼈다.
나를 낳고 먹이고 가르치셨는데 효도다운 효도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오죽했겠는가. 40대 초에 갑자기 고아가 돼버린 기분이었다.
부모가 다 생존해 계시는 것을 구경(具慶)이라 하는데 이는, 경사를 갖췄다는 뜻이다. 이제 주변에서 구경의 행복을 누리는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반면에 자식을 먼저 잃는 것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면 부모는 평생 동안 자신의 가슴에 묻은 채 산다고 한다. 참혹한 아픔이자 가슴이 미어지는 근심이며 씻을 수 없는 형벌이다. 부모님이 앞서가신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
자하(子夏)는 스승인 공자가 돌아가시자 겨우 삶을 이어갔지만, 자식이 죽자 너무 슬피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은 홀어머니의 천붕과 셋째아들 이면의 참척을 당하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이순신은 이면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난중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도 모르게 낙담하여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하도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못할 수가 있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게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것은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인가.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보인다. 슬프다! 내 작은 아들아, 나를 놔두고 어디로 갔느냐!”
고산 윤선도는 둘째 아들을 잃고서는 “가을바람 불고 달 밝은 밤이면 내 어찌 누각에 오를 수 있겠느냐”며 창작의 원천이었던 음풍농월(吟諷弄月)을 끊었다고 한다. 서양인도 다를 게 없다.
록가수 에릭 클랩턴은 네 살 난 늦둥이 아들을 사고로 잃고는 술과 마약에 탐닉했다고 한다. 아마 환각의 힘이라도 빌려서 아들을 보고자 했을 것이다.
작가 박완서는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먹는 자신을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다”고 썼다. 박완서는 남편을 보낸 후 석 달 만에 예비 의사인 외아들마저 먼저 보냈다. 그러면서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하거늘 이 어찌 하늘의 이치에 어긋난 일이 있는가!”하고 통탄해했다.
2010. 3. 26 백령도 근처를 지키던 해군 경계함인 천안함이 북한 소행으로 104명의 장병 중 56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2014. 4. 16 세월호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면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2. 10. 29에는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 골목에서 젊은이 159명이 걸어가다가 압사당했다. 모두 싱그럽고 예쁜 못다 핀 꽃망울들이 속절없이 스러졌다. 산화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처럼 부모님을 보내는 천붕보다 자식을 잃는 참척이 훨씬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들다. 세상에 슬픈 일은 얼마든지 있다. 가장 슬픈 일은 자신보다 자식을 앞세우는 것이다. 무엇으로 위로가 되겠는가! 참으로 참척의 슬픔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이다. 그래서 부모는 산소에 모시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어머니 기일을 며칠 앞두고 천붕의 슬픔이 다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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