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 | ⓒ 익산신문 |
마라톤, 철인3종, 트레일 레이스. 마라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테고 철인3종은 몇 년 전부터 점차 알려지기 시작해서 일반인들 입에도 자주 오르내린다.
뜬금없이 트레일 레이스라니. 이 종목은 운동깨나 한다는 사람에게도 아직은 생소하다. 트레일 러닝이라고도 하며 포장도로가 아닌 흙과 풀밭, 계곡, 숲길 등 다양한 자연 속을 달리는 산악마라톤이라면 이해하기 쉽겠다.
트레일 레이스에 푹 빠진 클럽 아우 이야기를 듣고 ‘그래, 저거다. 나도 도전해 보자.’라고 솔깃했다. 지금까지 마라톤, 철인3종에 진심이었고 그 엔진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이기에 도전은 언제나 새롭고 설렌다.
운동은 글쓰기, 헌혈 등 내 삶의 행간을 채워주는 꽃과 잎사귀 같다. 그 시간을 발효하면 잠들어 있는 육신을 깨우고 그 육신은 꿈틀대는 글감을 데려온다. 이번에도 심장이 요동쳤다. 지난 대회 영상을 볼 때 가슴이 뛰고 한편으론 두려움이 스멀스멀 어깨를 짓눌렀다.
4월 첫 주말, 장수의 산과 계곡이 나를 초대했다. 장수 사람들 인심 닮은 품 너른 장안산 정상이 나를 받아주었다. 미처 봄을 꺼내지 않은 산등성이를 달리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깨어있다는,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흠뻑 받는다.
장수군은 전북특별자치도 14개 시군 가운데 평균 해발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장수와 장계 분지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산악지형이어서 어떤 해는 철모르는 눈이 4월까지 펑펑 내리기도 한다. 이런 산악지대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한 장수군은 이제 산악마라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회장엔 온통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뿜고 있는 선수로 가득했다. 그 기운을 받아서 완주하자고 각오를 다졌다. 나태와 손잡으면 돌아서서 후회한다. 가파른 언덕을 넘을 때는 가슴이 터질 듯하지만, 산은 곧 등을 내어준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스키 슬로프 같은 내리막길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한다.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나락이다. 거기에 인생의 롤러코스터가 있다. 한 호흡 돌리고 나면 나무와 풀, 바위와 푹신한 낙엽이 품을 내어준다. 짧지 않은 낙타 등 같은 길을 내내 숨비소리 벗 삼아 달린다.
이따금 어깨를 스치며 앞질러 가는 선수의 한마디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물씬 담겨있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70km 코스 참가자들과 비좁은 길에서 마주친다. 이미 파김치가 되었을 법도 하지만 얼굴에는 한결같이 자신감이 넘친다.
고통을 드러내지 않으며 빠뜨리지 않고 서로 파이팅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같은 페이지를 보며 달리는 트레일 레이스의 마력이다.
산속을 달린다는 건 무작정 길을 내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길 안에서 내 발밑을 살피며 앞사람이 다진 화살표를 따라가는 일이다. 이 길에서는 모두 이웃이고 형제가 된다. 잠시 날갯짓을 멈추고 수줍은 진달래가 보내는 추파를 눈으로 삼킨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길이 촉촉하고 먼지도 없다. 아니다. 바람을 끌고 달린 선수들이 떨군 땀이려니 하며 나도 서너 방울 보탠다.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는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까 항상 설레고 묵직하다. 육신이 고통을 견디면 완주의 희열이라는 자신감이 선물로 다가온다.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에게 도전은 자유다. 잘하고 못하는 기준은 자신의 저울추로 재는 것이니 비교할 바 아니다.
장수는 호락호락하게 속살을 내어주지 않았다. 바싹 마른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몸을 이끌고 결승선을 넘었다. 종일 산허리를 굴러다닌 덕분에 앓는 곳 투성이지만, 장수의 기운을 받아 꾹꾹 눌러쓴 육필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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