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얼마 전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느 당의 누구를 뽑을 거야?” 갑작스런 질문에 문득 둘째 아들이 4년 전 해준 말이 생각났다.
자기반 아이가 해준 이야기인데 자기 아버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가 잘 모르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얘기하는 거 같고, 좀 무섭게 말씀하셔서 놀랐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반 아이의 아버지는 이른바 극우유튜버의 주장을 추종하시는 것 같았다. 그 아버지의 말씀대로라면 선거도 다 조작이고 우리나라 대통령은 북한 간첩이라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때 둘째 아들에게 어찌 말해 줘야할지 난감했다. 잘못 말하면 둘째아들과 반 친구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어른 들 사이에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가족과 친한 친구라도 절대로 종교와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라. 그 이유는 민감한 문제이고 생각이 다를 때 싸우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나 싶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이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다양성으로 존중하는 사회구조를 말한다. 그러다보니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 서로의 다름이 주장이 되고 그런 주장이 부딪치니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이것은 나쁜 게 아니다. 그러니 둘째 아들의 반 친구 아버지와 같은 생각도 내가 보기엔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좀 지나친 것은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합리적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문제로 보인다.
너무 편파적이거나 편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이는 둘째 아들의 반 친구 아버지만은 아니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지칭되는 어르신들도 그렇다.
아직도 철지난 색깔론을 주장하는 정치지도자도 있고, 부정선거와 선거조작을 거론하는 지도자도 있다. 심지어 5.18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주장도 있고 일제강점기를 옹호하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은 아무리 다양성이라도 해도 지나치고 문제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 이런 지나친 시각은 아니라도 해도 아직도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 내게 연락한 지인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투표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그런데 내가 참으로 씁쓸해한 것은 그가 한 말이었다. 얼마든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있을 수 있다. 그건 나도 그렇다.
그런데 지인의 주장은 정당의 정책이나 비전이나 후보의 자질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학교 출신이고, 우리의 종교에 유익을 줄 인사라는 것이다. 지인은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에 속한다.
그런데 그의 말에서는 지식인의 비판적 사고나 자기점검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
우리는 유권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주권을 당당히 행사할 수 있다 이 권리는 그냥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쉽게 행사할 것도 아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행사해야한다. 투표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내 선택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인들의 비리와 무능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이다. 투표권 있는 우리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투표하지 못했지만 미래 세대를 책임질 우리 집 막내와 같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 좋은 세상, 더 바람직한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투표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적합한 일꾼이 뽑혀서 그들이 입법 행정을 제대로 펼치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또 우리 미래세대에게도 더 좋은 세상을 기대하고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줘야한다.
이번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인적인 특정한 감정이나 어떤 것들에 휩쓸리지 말고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로 미래를 꿈꾸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자세로 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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