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 | ⓒ 익산신문 | 입춘이 지난 지 한참인데 길가에 세워둔 차들은 허옇게 성에 옷을 둘렀다. 뭐 하나 반듯한 게 없지만 그나마 매일 달리기하면서 내 몸을 깨우고 일과를 시작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새벽에 집을 나서며 아직도 게으름 부리는 몸 구석구석을 데운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속 깊은 곳에서 진한 땀방울이 배어 나온다.
언제부터인지 달리기가 내 삶에서 아주 커다란 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때로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앞을 막는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런 순간이 오면 해결하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늦춘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리고 나면 얽힌 실타래 끝이 보인다. 이렇듯 내게 달리기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진통제이다. 운동을 마치고 오면 아내는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나를 기다린다. 함께 수저를 들 때 감사하고 참 행복한 순간이다.
서울 마라톤이 정확히 4주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대회에 나간 지 어느덧 20여 년이 된다. 그 무렵에는 달리고 또 달려도 갈증이 났으니 지금보다 열정이 더 타올랐다. 서울 복판을 누비는 재미 삼아 꾸준히 참가해서 좋은 기억이 가득하다.
그런 옥에도 티가 묻었다. 지난해 대회의 악몽을 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참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대충 연습을 마치고 대회에 나갔다.
풀코스 마라톤에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35km를 지나면서 암흑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남들은 쉽게 말한다. 이제 나이 탓이라고. 나는 ‘아니다’에 한 표를 던진다. 마라톤이든 다른 무엇이든 꾸준한 준비 앞에서 나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오늘 새벽 이부자리를 박차고 길에 나섰다. 사위가 컴컴하지만, 두 눈에 힘을 주고 달리다 보면 어둠도 눈에 익는다. 익숙해지는 시간 동안 내 몸은 서서히 달구어진다.
지난주 20km를 달렸으니 대회 4주 전 프로그램에 따라 오늘 최소 30km는 달려야 한다. 졸음을 쫓아내고 미리 챙겨놓은 옷을 입었다.
혼자 달리는 길에 거칠 게 없다. 거리가 늘어갈수록 옷이 젖는다. 10km를 지나자 희뿌옇게 동이 튼다. 주머니에 넣어온 찹쌀떡과 물을 마시며 심호흡으로 각오를 다진다. 감로수라도 마신 듯 한결 느긋하다.
20km를 건너고 목표한 거리를 지났다. 누가 시키거나 의무감에 달리는 순간 그것은 하기 싫은 숙제가 된다. 다가올 대회를 준비한다는 마음에 만족감이 높아지고 기분 좋은 피로가 밀려온다.
달릴 때는 몸의 힘을 빼야 한다. 말은 쉽지만, 몸에 배지 않으면 절대 쉽지 않은 오랜 경험 끝에 얻은 교훈이다. 설 지나고 서너 군데 보내야 할 글 가운데 두 편째에서 펜이 막혔다.
참 신통하다. 힘을 덜어내고 달리다 보면 막혔던 코가 뚫리듯 막다른 골목에 갇혔던 글 맥이 잡힌다. 몸이 가벼우면 절로 생각도 자유로워지는 덕분이다.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으니 이렇게 몸으로라도 부대끼면서 남들과 걸음을 맞출 수 있음을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분명 달리기를 하면서 내 삶은 변화했다.
아무리 바빠도 새벽 운동시간을 만든다. 지금은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으니 하루하루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세 시간 넘게 땀을 쏟으며 돌아오는 길에 차들도 햇볕의 힘을 빌려 몸을 덥히는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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