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구들도 만나 안부도 묻고 옛 추억을 소환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절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소중한 추억이고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소중한 자양분이었다. 어렵고 힘든 그 시절을 견뎌낸 나 자신이 뿌듯했다.
이번 설날엔 참으로 오랜만에 귀한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늘 마음은 있었는데 서로가 바쁘고 사는 곳이 멀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오래된 사귐이 있었기에 오랜만의 만남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매일 만나던 사이처럼 정겨웠다.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서로 간에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마음이 훈훈해져서 좋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주 오래전 추억을 소환했고,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그저 그런 빈말이나 말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 대뜸 선배가 내게 물었다. “요즘에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인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을 했다. “내게 가장 큰 관심사와 소망은 내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선배는 내 대답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내가 한 대답의 의미를 설명했다. 어느새 나는 오십 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내 나이대 사람 중에는 꿈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이 있다. 권력욕, 명예욕, 물욕에 사로잡혀서 전력 질주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딱히 무엇이 되고 싶거나 하는 욕심이나 소원이나 목표가 없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내 가족의 행복, 내 자녀들의 잘 됨이다.
나는 선배에게 언젠가 본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드라마에서 천덕꾸러기 둘째 딸과 아버지의 대화 장면이었다.
딸이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소원은 뭐야?” 이 말에 아빠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는 그저 너희들이 잘되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어.” 이 대답에 딸이 어이없어하면서 말했다. “그건 우리의 소원이고. 아빠가 원하는 것, 아빠를 위한 소원이 뭐냐고?” 이에 아빠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아빠는 다른 거 하나도 바라는 것 없어. 그저 너희가 잘되는 것. 그것뿐이다. 그게 아빠의 소원이야.” 이 말에 딸은 감동 어린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아빠는 다정하게 딸을 바라봤다. 나는 선배에게 이 장면이 참으로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정말 그렇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못 해준 게 늘 미안하고 잘 자라줌이 고맙고 내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내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이 아깝지 않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이다. 이런 나를 발견하면서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을 깨달았다. 내가 이런 모습이듯이, 부모님도 내게 그러하셨다.
설 연휴에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으면서 내 아이들에게 이를 일깨워주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그 크신 사랑이 있었음을 가슴 깊이 되새기면서 효를 다하리라 다짐했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그립고, 연로하신 연세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설 명절이 지나면 아버지 곁을 떠나야 한다.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자주 연락드리고, 용돈도 우선하여 챙겨드릴 것을 다짐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되뇌었다. ‘못난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