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10-08 오후 05:36:06 전체기사보기 원격
전체기사
커뮤니티
 
뉴스 > 열린광장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월요아침窓】끈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24년 01월 19일(금) 19:13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 송태규 시인
ⓒ 익산신문

딱 삼백예순다섯 번째다. 누군가가 그랬다. 일년 내내 매일 한 셈이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삼백예순다섯 번째라니, 일년 내내라니. 문득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이도령이 춘향이를 홀리는 <사랑가>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도령: 일 년이면 몇 밤이냐?
춘향이: 삼백예순다섯 밤이지요.
이도령: 책방에 홀로 앉아 너를 생각하는 낮은 오지 말고, 일년 내내 너와 나와 만나주는 밤만 있어 주었으면.

갑진년 새해 첫 헌혈을 마쳤다. 까까머리 시절 내 첫 헌혈 시도는 먹구름이었다. 고2 때 학교로 헌혈 버스가 왔다. 수업 빼먹는 재미로 친구들과 우르르 버스에 올라갔다. 친구들은 간단한 검진을 마치고 차례로 헌혈대에 누웠다. 

내 차례가 오자 간호사 선생님이 헌혈대 대신 체중계에 올라가라 했다. 첫눈에 봐도 워낙 왜소했으니 몸무게부터 확인해 본 거다. 47kg. 남자는 최소 50kg 이상이었으니 헌혈 부적격자였다. 세상 무서운 거 없다던 그때 난 헌혈도 하지 못하는, 이른바 ‘루저’였던 셈이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렀고 바로 그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2001년 5월 16일, 첫 헌혈일 날짜도 또렷이 기억한다. 

30여 년 전처럼 그날도 학교에 헌혈 버스가 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처럼 헌혈 버스로 빨려갔다. 그리고 잠깐 따끔했던 기억을 헌혈 실패의 악몽과 맞바꾸었다. 

그 후 학생 단체 헌혈하는 날이면 빠뜨리지 않고 소매를 걷었다. 그렇게 시작한 헌혈의 끈이 지금은 내 삶의 커다란 한 축으로 자리했다.

학교에 근무할 때 단체 헌혈하는 날이었다. 누군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얼굴이 잔뜩 불은 선생님이었다. 교실에 가보니 학생들이 없고 진도도 늦는데 수업 시간에 헌혈하면 어떻게 하냐고 볼멘소리 하러 왔다. 

선생님과 부딪쳐서 좋을 일이 없다. 일단 자리에 앉히고 차분히 내 의견을 말했다. 수업에 차질을 빚게 해서 미안하다, 헌혈은 이미 교육과정에 있고 공부란 꼭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혈액이 급히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강을 나누어 주는 소중한 공부 아니겠느냐, 교실 대신 버스로 가서 헌혈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도 교육의 한 끈 아니겠냐고 달랬다. 

고맙게도 그 선생님은 내 말에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교장실을 나갔는데 버스로 갔는지 빈 교실을 지키고 있었는지 알려하지 않았다.

며칠 전 손녀가 우리 곁에 왔다. 세상이 변해서인지 요즘은 아빠가 분만실에 들어가 아이의 탯줄을 자른다고 한다. 탯줄은 어미와 새끼를 연결해주는 생명의 끈이다. 어미는 이 끈을 통해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고 태아는 몸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어미의 혈액으로 내보낸다.

탯줄이 잘리면 그때부터는 독립적 개체가 되지만 일정 기간 어미의 젖을 먹으며 심장 박동을 통해 새로운 끈을 연결한다. 세상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단단한 끈으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늘어뜨린 끈이 세상에 연결될 때 비로소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헌혈하면서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혈액을 바라본다. 투명한 관을 타고 미끄러지듯 흐른다. 이제 저 피는 내 것이 아니지만 간절하게 원하는 누군가와 나를 연결하고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맺는 새로운 끈이 될 것이다.

헌혈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삼백예순다섯 번 할 때까지 큰 탈 없이 남에게 연결할 수 있는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 배우는 사랑가를 흥얼거리며 헌혈의 집을 나선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 Copyrights ⓒ익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이전 페이지로
네티즌의견 0개가 있습니다.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등 법률 및 신문사 약관에 위반되는 글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익산 원도심, 문화산업으로 다시 뛴..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익산 인재 ..
"NS푸드페스타 어디서 열릴까?"…익..
익산시, 미륵사지휴게소 '로컬푸드 ..
한국여성유권자 전북연맹, 익산 한..
신흥, 익산 아동 과자 선물꾸러미 3..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에 휴식과..
최정호 시장 "전임 시장 행적 지우..
익산영신교회, 모현동 청소년 위해 ..
생산량 860% 향상…익산시, '스마트..
최신뉴스
식품진흥원, 왕궁면민의날 행사에 ..  
이웃에 따뜻한 한끼, 마동 '사랑의..  
평화동에 이어진 나눔…이웃돌봄부..  
남중동 주민자치위원회, 연탄 500..  
원광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2..  
월 15만원 장학재단 기숙사, 저소..  
익산소방서, ‘골든타임’ 비응급..  
익산 공공기관, 울타리 넘어 ‘청..  
정원상 시의원, 시민 다친 파손 인..  
익산여성단체협의회 전통장류 담그..  
㈜원진알미늄, 취약계층에 라면 50..  
‘북딜리버리’ 운영 개선 취지는 ..  
익산산립조합 봉사단, 다이로움 배..  
울트라마라톤 모은 310만원, 시각..  
아이빛유치원, 작은 손길 모아 따..  
인사말 연혁 편집규약 윤리실천요강 광고판매윤리강령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익산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3-81-34955/ 주소: 전북 익산시 인북로 190-1(남중동) / 발행인.편집인: 박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규
mail: ikpress@naver.com / Tel: 063-841-1221 / Fax : 063-856-2625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북 다011187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