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교육학박사 | | ⓒ 익산신문 |
작업실을 얻은 지 두 해를 훌쩍 넘겼다. 그 무렵 얼마가 지나자, 아내는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난 것 아니냐며 걱정 반 의심 반 섞인 눈길을 보냈다. 차를 작업실 주차장에 세워두고 집에 끌고 오는 날이 고작 한 달에 두어 번이었다.
혹시 사고 나서 공업사에 수리 맡긴 걸로 지레짐작했으니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집이 외곽이라 조금만 움직일라치면 운전이 필수인데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승용차 운전보다 시내버스나 기차로 이동하길 즐긴다. 곁에서는 손수 운전하면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 시간 절약할 텐데 굳이 그러는 이유를 묻기도 한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내가 원하고 옳다고 여기는 생활 방식이 있다.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지 않아도 틀에 정해진 대로 살기보다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은 까닭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물론 신중해야지만 일단 생각이 기울면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내 가진 재주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믿음과 목표를 향한 의지가 갈 길을 밝혀준다.
지난 8월, 난생처음 아내와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 가는 데만 꼬박 열네 시간 걸리는 지루한 비행이었다. 20여 년 전 뉴질랜드행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자거나 영화에 빠졌다. 그 후로 집을 나설 때 가방 안에 책은 필수품이 되었다.
그때 오며 가며 꼭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꼼꼼하게 독파했다. 곁에 앉은 일행이 눈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책 보는 게 습관이 된 때문인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자투리 시간에 휴대전화기만 만지작거리는 것보다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마음에 열정과 긍정에너지가 있다면 다소간의 불편함이 내 앞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나아갈 길에 의지를 접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넉넉함이 조급함을 누르고 여유가 너그러움을 동반하면 더 즐기거나 나눌 수도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 늦은 밤에 택시를 탔다. “제 차를 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다 버스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는데 그날 기사 양반이 전하는 인사가 귀에 설었다. 목적지를 말한 뒤 그분과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님 한 분 한 분 모셔서 가족들 먹고살고 자식들 다 대학교까지 보냈으니 감사하단다. 내년이면 운전대 잡은 지 20년인데 욕심 안 내서 개인택시도 샀고 작은 집 한 채 장만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며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만 넣었다. 어차피 하루 보내는 거 짜증내도 하루, 기쁜 마음으로 가도 하루, 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 가지면 자신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니 보탤 말이 없었다.
소박한 꿈을 가지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분에게 감히 훈수할 만한 지혜가 나에게는 없다. 내리면서 평소보다 훨씬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항상 안전 운전하세요.” 그날 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스승을 만났던 거다.
노을이 붉어지고 내 기억 속 대차대조표는 감사한 일로 가득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언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망연히 신호등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지만, 그저 입안에서만 맴돌고 만다.
새해에는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로운 삶과 희망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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