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사람이 짐승과 특별히 구별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언어’ 즉,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아서 탈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니 ‘말 같지도 않다’느니 ‘말만 앞세운다’느니 등의 말을 할 정도다. 그러기에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논어(論語)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중국 노나라 때 공자와 제자들의 어록을 엮어놓은 경전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지 공자가 저술한 책이 아니다.
논어는 인간의 정도를 안내해 주는 것으로 철학과 문학, 역사와 논리를 제시한 삶의 지혜로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교훈서이다. 성균관대학교의 졸업 필수 과목이기도 하다.
논어 제4권 이인편(里仁篇)은 선비가 살아가면서 처신해야 할 몸가짐을 설명해 놓았다. 그 이인편에 ‘말은 천천히 굼뜨게 하더라도 실천은 민첩하게 하는 것이 군자(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군자 욕눌어언 이민어행)’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줄여서 사자성어 ‘눌언민행(訥言敏行)’이라 한다. 말 더듬을 눌(訥), 말씀 언(言), 재빠를 민(敏), 행할 행(行)자로, ‘말은 더듬는 듯이 천천히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는 뜻이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이다.
성경에서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구절이 있다. 동양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하여 ‘상대방 입장에서 내가 행동해야 할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했고, 서양에서는 정언명법(定言命法)이라 하여 ‘내가 하는 행동이 남이 따라서 해도 무방하다면 해도 된다’는 도덕적 가치가 존재한다.
이처럼 동서양의 도덕적 가르침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은 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다. 말보다는 행동이, 행동에 앞서 경청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이 너무 변화무쌍하여 방향 감각을 잃고, 삶의 지침마저 혼란스러운 때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람은 짐승들과 달리, 배불러야만 편하고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비밀은 나만의 것이 아닌 이웃과의 관계 속에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말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속담은 많다.
‘글 잘하는 자식 낳지 말고, 말 잘하는 자식 낳아라’는 학문에 능한 사람보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 처세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이는 마음속에는 온갖 계책이 들어 있더라도 시원스럽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말을 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웅변의 재능은 신의 선물이라 하고, 시원스럽게 하는 말을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고, 말로써 많은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일도 많아 조심하라는 경구는 수두룩하다. 여기에 더하여 공자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실천이 더 중요함을 논어 곳곳에서 강조했다.
‘매사에 여유를 남겨라. 말을 다 쏟아내지 말고, 힘을 전부 사용하지 말며, 복을 모두 누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 여유를 남겨둠으로써 신중하게 처신하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활은 세게 당기면 부러지고, 물은 가득하면 흘러넘친다. 말을 할 때도 여유가 필요하다.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언행을 조심함으로써 실수한 사람은 드물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아 큰 관심을 끈 뒤에 시일이 지나면 어떤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특히 나라를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큰일을 하겠다는 정치인일수록 공약이 거창하다. 백 마디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한 번의 실천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말에 여유가 있으면 물러서고 나아갈 때를 알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하기 전에 반드시 두 번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