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이 지은 ‘관자’에 나오는 얘기다. “하나를 심어서 하나를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하나를 심어서 열을 거두는 것은 나무이며, 하나를 심어 백을 거두는 것은 사람이다”라고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6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되새겨볼 만한 의미 있는 구절이다.
중국 당나라는 7세기에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군주가 바로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다. 그의 치세 기간 당나라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그 당시 태종이 기득권 세력을 억누르고 신진 관료를 등용하기 위해 도입한 과거제도의 인재 선발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즉 관리를 뽑는 시험에서 인물의 평가 기준으로 삼은 게 몸(身體), 말씨(言辯), 글씨(筆跡), 판단(文理)이란 것이다.
신언서판은 중국 당나라 이후 동양 여러 나라에서 관리 채용 기준이었다. 우리나라도 고려 광종 때 도입되었고, 조선에서도 선비를 등용할 때 활용했다.
관료 등 인재를 고르는 기준으로 첫째는 신체(身)가 늠름해야 하며, 둘째는 말(言)이 분명하고 반듯해야 하며, 셋째는 글씨(書)가 해서처럼 정확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넷째는 판단력(判)으로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학교 다닐 때 한문 선생님이 칠판에 ‘身言書判’을 써놓으시고, 항상 신언서판이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상이 좋고 말씨가 고운 사람을 친구로 삼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도 하셨다.
신언서판 순서대로 인상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은 말씨, 글씨와 판단은 나중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신언서판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에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또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말 알 수 없는 게 사람들 속마음이다. 사람마다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신언서판으로 사람을 보는 판단 기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신언서판에서 외모가 첫째지만 만약 버려야 한다면 1순위 또한 외모다. 미인박명은 너무 예뻐도 팔자가 세다는 뜻이다. 즉 뚝배기보다 장맛이어야 한다.
조선 초기 황희 정승이 누추한 옷을 입고 길을 걷다가 시장기를 느낄 무렵 잔칫집을 지나게 되었다.
밥 한술 얻어 먹어볼까 하여 그 집에 들어서니 하인들이 대문부터 막았다. 배가 고파 그러니 요기나 하자고 통 사정을 해도 하인들은 막무가내로 정승을 막았다.
이후 그 집에서 다시 잔치가 열렸을 때 정승은 사모관대를 갖춰 입고 찾아갔다. 그랬더니 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도 버선발로 달려 나와 그를 맞이하고는 산해진미를 차려 내왔다.
그러자 정승은 잘 차려진 음식을 먹지 않고 음식을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를 보고 주인이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묻자. 정승이 대답하기를 “이전에 허름한 옷으로 찾아왔을 때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오늘은 귀한 대접을 하는구나. 모두 이 옷 덕택이니 음식을 먹을 자격은 이 옷에게 있느니라.”했다.
그렇다.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마치 수박의 겉만 보는 것과 같다. 수박의 겉만 봐서는 그 맛이 달고 시원한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람도 학벌, 가문, 외모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즉 내면의 인성과 덕, 재능, 실행력이 중요하다. 사람을 외모로 보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길 때 다른 사람도 나의 외모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며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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