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 | ⓒ 익산신문 | 새벽 다섯 시, 침대에서 손에 닿지 않을만한 곳에 둔 전화기가 나를 깨운다.
스위치를 끄기 위해 일으킨 몸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직 눈꺼풀이 무겁다. 잽싸게 칫솔을 입 안에 넣는다. 양치하면서 잠을 쫓는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새벽에 한 시간 반 정도 자전거를 타고 있다. 날 선 고갯길을 넘어갔다 오면 기분 좋은 피로가 몸을 감싼다.
어느 날은 땀을 씻는데 허벅지에 낯선 근육이 보였다. 짜릿했다. 힘을 줄 때마다 각이 잡혔다. 혹사당한다고 몸이 주인한테 대드는 선물이었다. 이따금 새벽에 게으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순간, 허벅지 근육을 떠올린다.
어떤 날은 중량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으로 간다. 문을 여는 새벽 6시가 가까워지기 한참 전, 헬스클럽 출입문 앞에 마치 좌판을 벌인 듯 사람들이 모여든다.
간밤에 쌓인 피로를 해소하며 하루를 맞이하려는 부지런한 회원들이다. 새벽 헬스클럽에는 각자 방식으로 건강을 가꾸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누구는 양팔을 요란하게 휘저으며 걷고, 온갖 힘을 짜내며 역기와 씨름하는 이도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가 하면 머리띠를 두르고 흥건하게 운동복을 적신 채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도 있다.
저쪽 벨트 마사지 기계 옆에는 할머니 서너 분이 모여 수다를 곁들인 웃음소리가 경쾌하다.
땀을 흘린 뒤 뿌연 김으로 가득 찬 목욕탕으로 가면 운동보다 목욕하는 재미로 오시는 분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서둘러 운동을 하고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은퇴하여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는 어르신들이다.
몇 년 동안 함께 새벽을 맞이하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고 반갑게 인사하는 이웃이 되었다. 서로 자연스럽게 옆 사람의 등을 밀어주며 정을 나눈다. 달구어진 몸을 냉탕에서 기분 좋게 식히고 시작하는 하루의 맛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함이다.
한쪽 팔을 잃으신 분이 계신다. 불편하겠지만 목욕탕에서 나머지 한쪽 팔을 이용해서 웬만한 일은 거뜬하게 처리하신다.
자신의 등을 미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다. 그때가 되면 누구랄 것 없이 곁에 있는 분이 정성스럽게 등을 밀어주신다. 그러면 그분은 밝은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한다. 그 순간 지켜보는 우리는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된다.
사는 게 별것인가. 이렇게 함께 새벽을 맞이하는 이웃이 있어 참 포근하고 행복하다.
헌혈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헌혈하려면 3단계로 소독을 한다. 매번 이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잠시 후 숨을 크게 들이쉬라는 소리와 “따끔해요”라는 말이 이어진다.
막상 바늘이 살갗을 뚫을 때는 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 책을 보다가 얼추 시간이 되어 인증 사진을 부탁했다. 선생님들의 농담 소리에 입이 귀밑에 걸렸다. 웃으니까 훨씬 미남이란다. 웃어서 안 예쁜 사람도 있을까마는 웃으면 행복하고 내 맘도 편하다.
운동하면서 달라지는 몸매를 보는 즐거움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 매력이 고통을 견디게 만든다. 헌혈도 바늘에 찔리는 아픔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따끔. 1초의 찡그림을 견디면 생명을 나누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150번 이상 바늘에 찔린 양쪽 팔꿈치 안쪽에는 언제부터인가 굳은살이 박여 있다.
마치 훈장처럼. 헌혈을 예약해 놓고 시간에 쫓기거나 일정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오늘도 매일 새벽 자전거 안장에 오르듯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2주에 하나씩 덧칠해지는 숫자를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이 어느 순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355회째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어깨에 앉은 해는 지친 기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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