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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8월의 독립운동가에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의 주역들로 굳건한 독립의지를 보여준 윤준희·임국정·한상호·김강 선생을 선정했다.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무장투쟁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하고자 비밀결사인 철혈광복단을 조직했다. 선생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롭게 만세운동을 펼치는 학생 등이 무차별 진압되는 것을 보고 오로지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임국정 선생과 윤준희 선생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조선은행 자금을 탈취할 계획을 논의했으며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북간도 용정을 향해 출발한 일화 15만원을 운반하는 호송대를 간도 용정촌 부근의 골짜기에서 습격해 자금을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일화 15만원은 소총 5천정과 탄환 50만 발을 구매 할 수 있는 금액으로 만주지역의 독립군 모두를 무장시키고 더 많은 부대를 추가로 조직 할 수 있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그러나 일경은 숙소를 포위하고 잠들어 있는 선생들을 급습했다. 선생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체포되어 블라디보스토크에 정박 중인 일본 군함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평안도 출신의 김강 선생은 하얼빈에서 한인청년들을 규합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힘썼다. 1913년 간민회(한국인 자치단체로 문화계몽운동과 민족자치운동을 펼침)가 조직되자 간도 용정에서 간민회 일본조사부원으로, 동제회 평의원과 대동협신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선생은 제1중부지방회의 중부경호부장으로 활동하며 친일 협력자들을 처단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1919년 11월 출범한 간도청년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간도 지역 청년들의 항일의식 강화에 매진했다.
그러나 1920년 연길현 부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출병한 일제의 카노 기병연대에 ‘간도 15만원 사건’의 연루자로 체포되어, 중국 연길현에서 피살되어 순국했다.
선생들이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실행한 간도 15만원 사건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쾌거를 이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에게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강 선생에게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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