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정성수 시인 | | ⓒ 익산신문 |
옛날 우리의 개는 대문 뒤나 마루 밑에서 살았다. 1m 남짓한 목줄에 매여 쇠말뚝을 중심으로 빙빙 돌면서 한세상을 보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주인의 몸보신을 위해 한 그릇의 보신탕이 되거나 한 접시의 수육이 되어 술꾼들의 술맛을 돋우었다.
그러던 개들이 인간들의 가족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주인과 숙식을 같이 하며 안방까지 차지할 만큼 신분이 상승했다.
호화찬란한 의상에 영양가 만점인 의식주 해결은 여느 인간 못지않다. 때맞춰 예방주사를 맞고 아프면 병원에 간다. 그뿐이 아니다. 미용실에 가 털을 고르고 발톱을 다듬는다. 그야말로 ‘개 팔자 상팔자’가 되었다.
개들의 위상을 대변하는 듯 ‘펫 산업’이 호황이다. 곳곳에 식당, 놀이터는 물론 개들을 위한 맛집, 카페 등이 성업 중이다. 헬스장에서는 개들의 비만 관리를 위한 ‘견공다이어트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변검사키트, 발바닥보습제 등 개 관련 용품이 쏟아지고 있다. 개들을 위한 장난감, 개 껌은 기본이고 개용 삼계탕, 개 카레, 개 케이크도 있다.
개들을 위한 우유가 사람이 마시는 우유보다 3배가 비싸다. 이빨 스케일링 한 번에 수십만 원이다. 먹이는 유기농식품이고 개는 의료보험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병원비가 장난이 아니다. 휴가철에 주인이 휴가라도 떠나면 개들은 전용 호텔에 묵는다.
병사하거나 자연사를 하면 사람처럼 장례예식장에 빈소가 마련되고 영정이 내걸린다. 납골당에서 영면에 들면 가끔씩 찾아오는 주인의 눈물을 받아먹기도 한다.
어제의 개들은 이제 애완견을 넘어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친구가 되고 자식의 반열에 올랐다. 개를 유모차에 태워 밀고 가고, 등에 업거나,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내 새끼 내 새끼’하며 엄마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세상이다.
아이스크림을 개가 한 번 핥아먹고 주인이 한 번 핥아먹는 광경은 흔히 목격하는 일이 되었다. 여름철임에도 불구하고 고슬고슬한 옷을 해 입히고 여름용 신발까지 신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웃 간에 층간 소음이 난다며 짖지 못하게 성대 절제 수술은 물론 번식을 막기 위해 거세와 불임수술을 사람들 마음대로 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욕을 할 때 ‘개 같은 놈’,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한다. 또한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 ‘복날 개 팬다’ 등을 개들이 듣는다면 개들이 떼거리로 덤벼들지도 모를 오늘날이다.
거기에 더해 개를 사랑하는 모임 ‘개사모’에서 견공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항의를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말처럼 자신을 모르면서 남을 탓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개는 개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순리다.
개를 반려견으로 키우려면 아이 하나 키우는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죽어서 장례비용도 못 마련해서 곤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개가 사람보다 앞에 있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인간과 달리 배신이라는 걸 모르는 개는 인간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리 개가 사랑스럽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인간은 개보다 나은 인격을 가진 존중받아야 할 만물의 영장이다.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개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 개에 투자하는 정신적 물질적인 것을 감수하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을 잊고 살면 죄를 짓는 일이다. 개는 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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