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더운 여름날 한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빵 가게에 들어가 빵을 사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공원의 의자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바쁘게 빵을 먹고 있었다.
그때 고급 자동차 한 대가 빵가게 앞에 멈추어 섰다. 차에서는 비서인 듯한 여자가 내리더니 빵을 사서 차 안에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청년은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도 누군가가 사다 주는 빵을 저런 멋진 차 안에서 편히 앉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더운 날 땀을 흘리면서 청승맞게 공원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먹고 있는 자신이 정말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자동차 안에서 빵을 먹고 있던 남자도 공원 의자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저 청년처럼 다리가 건강해서 빵을 사 먹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저렇게 공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빵을 먹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부러워하며 상대방만 행복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일방적이다.
이처럼 우리는 나에게 없는 것, 내가 갖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산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기뻐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린 것이 더 좋아 보이면 그 기쁨도 잠시뿐이고 감사한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사람에게는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등감과 비교 의식이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비교하고 불평하고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인생을 살아가면 어떨까 한다.
이것을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 한다. ‘나는 오직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즉 남의 눈치 살피지 말고 내 삶의 방식대로 현재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렇다. 행복은 만족에서 오고, 불행은 지나친 욕심에서 온다고 한다. 만족이란 것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군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도 본인이 만드는 것이다.
불행은 어떤가! 지나친 욕심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일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극락에 있어도 그것을 모른 채 부족하다는 푸념을 늘어놓을 것이다. 만족을 모르면 불만이 싹트고 주변 사람과 싸우려 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큰 집에 사는 사람이 미워진다. 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심술이 난다. 그래서 남이 행복하고 잘사는 꼴을 보지 못한다.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이다. 그래서 매사에 괴로울 뿐이다.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상황이라도 즐겁다는 생각에 늘 행복해 할 것이다.
티벳 속담에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주변의 가장들의 삶은 이렇다. 월수입이 백만원인 사람은 겨우 세금 내면서 정말 빠듯이 살아간다. 가족 중에 누구라도 아프면 끝장이야 하면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월수입이 삼백만원인 사람은 자녀들 한 두곳 학원 보내고, 보험료 내면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월수입이 천만원인 사람은 자녀의 해외 유학비를 대느라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반면에 월수입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은 2조원의 재산 때문에 자식들의 상속싸움 걱정으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어느 누구든 크든 작든 걱정거리 한 두 가지쯤은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기에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라는 것이 오유지족의 교훈이다.
만족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자만해지면 그때부터 기울게 된다. 마치 달도 차면 기울듯이 그에게 더 이상의 권력과 부는 주어지지 않는다. 설사 가난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는 반드시 밝은 미래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