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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은 삶의 소리요 시름을 달래는 樂
고향에 어울려다가 농악을 만나
이준용, 유지화 문화재에게 전수받아
자수성가하여 우도농악 본존열의 가져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09년 04월 13일(월)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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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풍물굿을 치면 소리가 삼십리 밖에까지 들린다고 한다. 풍장 소리가 나면 습관적으로 대문밖에 나가 귀를 기울이고 자식에게 매질을 하던 엄한 아버지도 매를 놓고 풍물굿 판으로 뛰어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풍물굿은 심장의 고동과 맥박을 꿈틀 이게 하는 놀라운 힘과 흥겨움을 가지고 있다. 피로한 심신을 풀고 아무 거리낌 없이 “판”이든 “마당”이든 모인 사람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 부르며 힘겨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구이며 축제 판이 풍물농악이다.
그런 놀이가 이제는 기능인들이나 할 수 있는 예술성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통 예술을 만나게 되는 사람은 많지만 끝끝내 지켜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농악의 맛과 멋이 어디에 내놓아도 일품이요. 진국이라는 호남우도농악을 이어가고 보존하고자 매진하는 우도농악 류기열 명인(58, 호남우도농악보존회) 회장을 만난다.

#흙에서 풍류를 만나다

류기열은 1954년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에서 류인환, 최순례의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넉넉지 못한 가정인지라 먹고 사는 일에 급할 뿐이었다. 평소 전통음악을 흠모하던 그는 농악을 만나게 된 계기는 고향을 지키는 외로움을 달래고 어른들과 어울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30세를 넘어갈 무렵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나가 화물차운전은 물론 닥치는 대로 일을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자 자신의 길은 흙과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고향에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서서히 종걸마을에 노인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분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풍장을 배우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동네 어르신들이 백구면 가전리에 가면 장구를 잘치는 유명한 분이 있는 다는 말에 서슴없이 달려간 곳이 백구면 가전리 이준용(전북 무형문화재7-9호)선생님이었다. 유명한 백구농악이 근근이 유지되던 때였다. 선생님의 맛있는 가락에 단숨에 매료되어 마을회관에 모셔다가 10여명이 배우게 된다. 
그러나 고향에 귀농하여 농사짓다가 양돈 일에 점점 자리를 잡혀 갈 때 인지라 축사 등을 건축하느라 2년여를 장구를 멀리 했지만 항상 마음과 몸은 농악을 향하였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마음에 이준용 선생님이 익산국악원에 출강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국악원으로 혼자서 날마다 배우러 가게 된다. 거기서 호남여성농악 채상소고 이옥금 명인에게도 기량을 익히게 된다. “당시는 익산에 농악 기능인 단체는 물론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었을 때입니다. 이준용 선생님이나 이옥금 선생이 익산의 농악 저변확대와 활성화 기틀 마련에 상당한 공헌을 하신 분들이라 자신합니다.” 지금이사 어느 곳에서든 사물놀이 바람을 타고 많은 풍류인의 인구들이 농악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배우고 또 배우고

익산국악원을 정신없이 드나든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어언 6년여를 다니면서 익산의 시군대항등 각종대회에서 3번이나 상을 수상하는 등 익산시 행사는 도맡아 하던 기억이 새로울 뿐이다.
선생님에게 정신없이 배우고 모자라는 부분은 백구 가전리 선생님 댁으로 가서 배웠다.
제자가 욕심이 있으니 선생님 또한 가르치고자하는 욕심이 넘쳤을까. 때로는 류기열의 집에 선생님이 가서 지도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10여년을 배우던 어느 날 이준용 선생님은 자신은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지도할 수 없으니 다른 곳에서 배워도 좋겠다고 소개 해준 것이 호남 여성농악의 명인 정읍의 설장고와부포춤 명인 유지화(전북 무형문화재7-2호)선생님을 소개시켜주었다.
“저는 선생님의 가락이라면 참으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서서 할 수 있는 선반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는데 마침 선생님이 연로하시어 부족하니 유지화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셨지요. 참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된 것이 유지화선생과 3년의 공부로 매일같이 하였다.
심지어 정읍까지 하루에 양돈 일을 하고 틈만 나면 오전과 오후등 캵 번씩도 지도를 받으러 다녔다.
정읍에서 오는 길에 가끔씩 부량면에 박판열선생님에게도 한수 지도를 배우는 일은 거스르지 않았을 정도로 농악에 대한 욕구가 넘쳤다.

#선생님들의 끝 모를 예술세계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고난의 고비를 넘어야 이룰 것인데 선생님들은 지금보다 혹독한 길을 걸으셨을 것이라고 한다.
“이준용 선생님은 아무리 몸이 불편하시고 농사일에 정신이 없는 때라도 풍장 치는 소리나 판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실 정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의 장구가락은 물론 특히 쇠가락은 어느 누가 넘보지 못할 신의 경지에 있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한가락으로 한 시간을 놀아도 질리지 않는 쇠가락을 가지신분이 이준용 선생님이 십니다.” 정읍에 유지화선생님은 장구놀이와 부포놀이가 뛰어나신 분인데 여자 이면서도 정말로 엄격한 성격으로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릴 정도 이었다고 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을 용서하지 않고 지도해주었는데 그분의 매운 성격을 버티고 전수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배우고자하는 정신 하나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박판열선생님의 예술을 또한 훌륭하신 분이고요. 지금은 그나마 가락보도 있고 가르치는 지도 방법도 발전되어 쉽게 익히게 하였지만 선생님 같은 분들은 그저 어려서부터 죽자 살자 풍물단 따라 다니면서 시중을 들어가면서 배우신분들이다.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배우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의 인고는 오늘의 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진대 요즘 사람들은 쉽게 하려고하니 쉽게 포기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술은 여물어야 제 맛이 나고 제 것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배워도 한참 아래인 선생님과의 차이는 도리가 없는 것일 것이다.

#맛있는 호남우도농악을 보존한다.

풍물은 오랜 기간에 걸쳐 민중들에 의하여 갈고 다듬어져 전승되어온 전형적인 놀이 형식의 예술이다 놀이 형식의 예술은 삶의 가치 획득에 그 목표를 두게 되며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데 그 역점을 두게 된다. 그래서 놀이는 단순한 유휘나 오락이 아니라 여러 가지 덕목과 품성을 일구어 내는 역할을 하였다.
“농악이 옛날 군악에서 유래되었는데 말 그대로 농악은 우리 두레농경문화의 커다란 힘이요 힘든 사람의 심신을 달래고 기름과 같은 가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숨소리요, 서민들의 樂이었지요.”
“우도농악은 전주비빔밥 같은 것이지요. 정말로 좋은 재료와 감칠 나는 기능으로 사람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되듯이 절묘함 가락과 오래 동안 여물어내 기능으로 담백하고 감칠 나는 그리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가락이 우도농악이지요.”
호남우도농악은 전라도 서부지역의 농악으로 전북의 익산, 옥구, 김제, 부안, 정읍, 고창 등지와 전남등지에서 전승되는 농악을 말한다. 우도 꽹과리가락의 특징은 비교적 느린 템포로 연주하면서 가락을 치밀하게 변주하여 리듬이 다채로우며 맺고 푸는 기법을 사용한다.
오늘날 사물놀이의 대중화로 농악이 친해질 수 있지만 농악과 사물놀이는 분명히 다르고 농악의 가락과 멋에서 꾸며졌으므로 농악을 먼저 알아야하는데 요즘 일부 젊은이들은 농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물놀이에만 심취해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다.
“선생님이 83세입니다. 갈수록 기량이 어떨지, 건강이 염려되는데 우리가 선생님의 뜻과 가락을 하나라도 정확하게 전수를 받아 계승 발전하고 보존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전통을 받아가는 제자로써 옛날 것을 이어오신 선생님들의 발자취를 멈추지 않게 하자는 일환으로 우리 이준용 선생님의 보존회를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지요.”
한창 장구에 빠져 있을 때 장구 칠 곳이 없어서 비닐하우스나 창고등지에서 하였는데 주변지인들과 당시 같이 장구를 치던 단원들의 건의로 건립 등으로 모은 3000여만 원을 기부하고 市의 지원과 대지의 주인 정진팔씨가 기꺼이 대지 100여 평을 선뜻 희사라는 바람에 성사되어 호남우도농악 보존회본부로 전수관이 되었다.
현재 이준용 선생님의 보존회는 제자들이 선생님의 뜻과 기량을 전승하고 유지하고자 2005년에 창립하여 50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선생님을 모시고 가락과 판 굿을 전수하고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모인다고 한다.

#자수성가, 금쪽같은 아내 덕

류기열 그는 무엇이든 열성을 다하는 성격의소유자다. 그는 현제 양돈축사 12동에 3000여두가 넘는 양돈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한때는 6000여 두를 키울 때도 있었지만 정리하고 농사일을 병행한다.
그가 처음 시작할 때는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고생만하고 되는 일이 없으니 할 일이라고는 흙과 싸우는 일이라고 맘을 먹고 돼지 한 마리로 시작한 것이 현재의 살림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 막막하기도 하고 희망도 가? 수 없는 현실이었는데 한마리가 새끼를 낳고 일부는 팔아 살림을 하고 일부는 종자로 하면서 늘려갔지요. 불어나기 시작하니 잘되더라고요.”
그가 장구에 미쳐 정신없을 때도 돼지가 늘어나니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바쁜 와중에 아내 이귀남(50)씨는 집을 소홀이하는 남편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장구배우면서 격은 사연은 참말로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날이 샙니다.”
“어느 날은 아내와 싸우고 장구통을 부숴버렸는데 아내가 슬그머니 장구를 사왔더라고요. 남편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래서 잘해보라면서요. 정말로 결혼해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이었는데 지금같이 오게 된 것은 아내의 적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장구를 치면 시끄럽다고 난리를 피운 것이 아내였다. 하지만 현재는 아내도 같이 배워 부부가 장구를 메면 남부럽지 않은 화음이 나온다. 아내가 취미가 없이 오로지 돼지 키우기에 바쁜 돼지엄마인데 남편이하는 취미를 같이하면 싸울 일도 없고 같이 어울릴 수 있어 배웠다고 한다.
“ 이 전통 문화의 특징은 판을 벌리는 꾼이나 구경하는 분들이 좋아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한 덩어리가 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어울릴 수 있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울림이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힘든 일을 하는 자기들 같은 사람들이 회포를 풀고 스트레스를 녹이는 데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류기열이 걸어 온 길

장남으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던 그는 30세에 백구농악 명인 이준용(전북 무형문화재7-9호)선생에게 장구와 괭가리를 사사한다. 정읍농악의 유지화(전북 무형문화재7-2호)선생에게 설장고들을 사사한다. 이후 공덕농악단 창단, 어울마당풍물단 창단, 회춘농악단, 등에서 활약하고 시군대항 농악대회에서 3차례수상, 서울농이마당 5회 공연감독, 전통문화센터 공연감독, 매년 지평선축제 문화재 시연행사 감독,을 하였고 민족문화예술대상, 국악협회장상, 공덕면민의장상을 수상한다. 지금도 전수관에서 후진양서에 열중이며 전북대학교에도 출강하고 있다는 그의 열의가 대단하였다.
부인 이귀남(50)과 2남으로 류재경(32) 류재성(30)을 두었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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