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얼마 전 오랜 병석에서 고통으로 힘들어하시던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어머니는 지난해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이런저런 검사 끝에 직장 쪽 염증과 암으로 판정받고, 장기간에 걸친 큰 수술을 받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는 어머니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았다. 제대로 연락도 안 드렸다. 멀리 떨어져 살고, 바쁘다는 핑계로 기껏해야 명절이나 여유 있는 휴일 때나 찾아뵙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내게 어머니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분주한 직장생활과 내 가정 꾸리는 게 우선이었다. 어머니는 자주 보고 싶다거나 연락을 자주 하라는 당부가 없으셨다. 어머니는 아들인 내가 우선이셨다. “바쁜데 뭘 자주 찾아오고 연락하냐?”면서 아들인 나를 배려하셨다.
나는 참 바보스러웠다. 이런 어머니 말씀을 내 편한 대로 듣고는, 내 위주로 그대로 따랐다. 사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일생을 다 바쳐 헌신적으로 양육한 아들을 봐도 봐도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참 불효막심한 아들이었다.
나는 남들에게 뽐낼 정도로 성공하거나 화려한 이력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을 일구었고 교육자로, 목사로, 작가로 자기 몫을 감당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나의 나 됨이 내가 잘나서가 아닌 어머니의 헌신 결과였음을 이제야 확실하게 알았다. 어머니의 사랑, 헌신을 진작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효를 다했을 텐데……. 왜 진작 몰랐을까?
나는 이젠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맛있는 걸 사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경치 좋은 곳에 모시고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어머니 떠나시고 난 후, 나의 불효를 생각하니 자책감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내 어머니가 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힘을 내주신 깊은 사랑이다. 얼마 전 어머니를 뵐 때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힘들게 몇 말씀 해주셨다. 그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간직하면서 살 것이다.
어머니가 위중하시다는 연락받고 급히 찾아가서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호흡기로 호흡하시고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시는 중에도 내가 갈 때까지 생을 마감치 않으셨다.
내가 병원에 도착해서 아들이 왔음을 말씀드린 후 불과 5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어머니에게 연결된 기기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났다. 급하게 간호사가 왔고 연이어 의사가 와선 이것저것 살피더니 어머니의 사망 선고를 했다.
나는 황망한 중에 아버지와 아내와 동생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미리 파악해둔 장례식장에 연락해서 어머니 시신을 운구하고, 장례식장에 안치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렇게 어머니는 아들인 내가 마지막을 함께하게 하셨고, 가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준비하고 진행하도록 시간을 허락해주셨다. 처음 해보는 상주 역할을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병환이 깊어지다 보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이었다.
어머니는 역시 위대하시다. 사랑이 깊으시다. 새삼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는다. 아직도 어머니의 떠나심이 믿어지지 않고 얼떨떨하기도 하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고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내 편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의 떠나심으로 깨닫게 된 것들이 많다.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진지해지고 겸손해진 것 같다. 이제는 슬픔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소천으로 홀로되신 아버지께 효를 다하고, 어머니의 당부대로 겸손히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내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걸어가련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열심히 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