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세림약국 약사 소현숙 | | ⓒ 익산신문 |
아침 출근길이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보폭을 크게 하여 아주머니의 곁을 스쳐 지나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연륜의 주름이 보이는 그녀는 젊은 여성이 아니고 5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손에 책을 들고 걷는 초로의 아주머니가 ‘매우 인상적이다’는 느낌을 가지며 책표지를 쳐다보았다.
‘삶이 바닥부터 흔들릴 때’라는 제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목을 보고 나니 책을 들고 있는 초로의 아주머니의 걸음걸이가 흔들려 보이는 듯도 했다. 갈림길에서 아주머니는 우측 옆길로 걸어갔고, 나는 좌측으로 돌아 약국에 도착했다.
책의 제목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지만 아직 읽어 본 적이 없는 책이었기에 검색을 해보았다. 어느 목사님이 쓴 신앙에세이였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바닥부터 흔들리는 삶을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아니면 더욱 깊이 있는 신앙심을 함양하기 위해 그 책을 골랐으리라. 그 책에는 삶을 일으켜 세우는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있으리라.
삶을 영위하면서 생기는 어려움은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되니 바람이 분다는 것은 삶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풍력발전기가 되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메시지를 부여해주리라….
이렇듯 아침 출근길에 만난 그녀는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걸어간 것만으로도 그 책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의지와, 위안과 격려를 시사해 주는 것 같았다.
일전에 ‘독서하는 여인의 그림’을 관람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이 떠오른다. 휴가의 첫 날, 순천만 정원박람회를 관람하고 이튿날에는 해남 땅끝 마을에 들렀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를 돌아보다가 유적 전시관에서 윤선도의 증손인 윤두서와 그의 아들 윤덕희가 그린 민속화 몇 점을 관람했다. 휴가가 주는 여유를 누리며 그림 한 점 한 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중 윤덕희의 ‘독서하는 여인’이라는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조선 시대의 여인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었다.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아 넓은 폭의 병풍을 배경으로 파초가 시원스럽게 그늘을 만들고 나뭇가지에는 새가 앉아 독서하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정경이다.
그림 속의 여인은 노안이 와서 시력이 좋지 않은지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짚어가며 책을 읽고 있다.
여인이 읽고 있는 책은 조선 후기 한글 소설인 숙향전이라고 하는데, 한문본으로는 이화정기(梨花亭記)라고 하는 책이다.
이 소설은 ‘영웅의 일생’의 구조에 따라 여성의 수난을 그리면서, 애정 성취의 욕구와 같은 여성의 관심사를 다루어 조선시대 여인들이 정성껏 필사하여 돌려보던 책이라고 한다.
그동안 ‘독서하는 여인’이라고 표제가 붙은 그림에 대해서는 마티스, 모네, 르느와르 등의 프랑스 인상파 화가가 그린 외국 작품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우리나라의 풍속도에서 ‘독서하는 여인’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박하고 단아한 머리 맵시에 평상복인 한복을 입고 책을 읽고 있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여인! 그녀는 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서하는 여인’들은 책을 읽으면서 꿈을 꾸고 이상향을 여행하며 삶의 역경을 치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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