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장정남 익산여성새일센터장 | | ⓒ 익산신문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중략)
이 노래에서 파랑새는 동학농민운동 때 푸른색 군복을 입었던 일본군을 녹두는 전봉준을, 청포장수는 일반백성을 의미한다. 학창시절 시험문제에 자주 등장하는 만가이다.
만가는 죽은이를 애도하는 노래로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나아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소리를 말한다.
동학농민군의 아내들이 전사한 남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울부짖으며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조선은 안동 김씨들이 세도정치를 하던 시절이었고, 생활이 어려웠던 백성들은 곳곳에서 수많은 민란을 일으켰다. 그때 백성들 사이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가 확산되었다.
양반과 백성 사이의 차별이 심했던 당시 상황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소중하다’는 천주교의 교리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때 최제우라는 사람이 ‘서학’이라 불리던 천주교에 맞서는 새로운 가르침인 ‘동학’을 만들었다. 동학은 빠르게 백성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동학농민운동은 평화롭게 살기 위한 사회참여활동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보통 못살겠다를 외치는 농민들이 일으키는 민란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농민뿐만아니라 상인, 일부 양반, 지주부농 출신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가치체계 속에서 보국안민(온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척왜양창의(일본과 서양 세력을 몰아내자)를 주장한 동학농민운동에서 평등, 인권이라는 가치를 주장했다.
또한, 해월 최시형은 장안리 동학민회지에 모인 사람들에게 ‘몽둥이 하나 없게 하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전투에서 죽음을 당하자 전투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었지만 해월과 동학농민운동에서 평화라는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동학농민군과 관군의 전투에 연달아 패배하여 전주성을 빼앗긴 무능한 정부는 동학군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개혁의 길로 가지 않고, 우리 농민들을 막아 보겠다며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또한 호시탐탐 조선 땅을 넘보는 일본군은 청과 맺은 조약의 이유를 들어 군대를 파견하여, 자신들의 땅도 아닌 조선에 와서 청나라와 싸움을 했고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죽어갔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 다른나라의 군대가 들어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은 현재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위험과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모습을 몇 백년 후손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신라의 삼국통일이 후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삼국을 통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통일이 아닌,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옛 고구려 땅을 당나라에게 줄 수 밖에 없기에 완벽한 통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는 외교정책으로 인해 조선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의 침략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일본의 침략 야욕과, 부패·무능한 조선왕조 봉건 지배층의 외세 의존 및 보수 유생의 체제 수호의 벽에 좌절하였으나, 1894년 이후 전개된 의병항쟁, 3·1독립운동과 항일 무장 투쟁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회개혁 운동과 자주적 국권 수호운동으로서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민중운동의 근간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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