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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기 선생은 1878년 5월 19일 익산군 오산면 오산리(현 관음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남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24살 늦은 나이에 군산영명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우는 소학교 학생과 한문 선생을 겸했습니다.
1911년부터는 함경도 갑산 금광채굴 현장에서 8년간 비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민족대표 33인과 연계, 호남 일대 동지들과 거사를 계획하여 4월 4일 이리 장날(현 남부시장 인근) 대교농장 앞 장터에서 1천여 이리시민의 선봉에서 대한독립 만세운동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일본군은 태극기를 든 선생의 오른팔을 칼로 베어 태극기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이에 선생은 하나 남은 왼팔로 태극기를 다시 주워들고 만세를 외치며 뛰쳐나가자 나머지 왼팔마저 잘라버렸습니다.
문용기 열사는 두 팔을 잃은 고통에도 앞으로 뛰어가며 계속 만세를 외쳤고 이에 격분한 일본군은 총검으로 사정없이 선생의 온몸을 찌르고 난자하여 결국 처참하게 살해당하셨습니다.
부인인 최정자 여사가 당시 순국할 때 입었던 피 묻은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이 된 이후에 꺼내 들고 통곡하였으며 현재는 천안 독립기념관(제3전시관 존Ⅱ)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로 우리 대한의 신정부를 음조하여 여러분들이 대한의 신국민이 되게 하겠소.”라고 외친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문용기열사동상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3.1독립운동기념공원 내에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2018년 8월 8일 현충시설로 지정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정신 함양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 위치 : 전북 익산시 중앙로4길 59 (3.1운동독립운동기념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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