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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가 만난 문화예술인-“시를 통해 삶의 위안을 읽게 해주는 마음의 고향”
익산 문단의 대부 채규판 시인
25세 신춘문예 당선…안도현 등 유명인 배출
작품으로 말하는 작가도량 갖춰 후배들 존경
가람 후학자문에 매진하며 문학연구 등 활발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09년 03월 30일(월)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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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그 겨울 용케도 견뎌내더니 지천이 초록물결이다. 저마다 입새들은 살찌고 꽃대궁들은 나래를 펴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유년의 세월이 참 그립다. 가난한 고향은 더욱 그렇다. 떠난 것은 사람이고, 그래도 떠나지 않은 것은 고향이다.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고,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는 시인의 가슴을 도리친다.
봄날 환희의 물결이나 고향의 아득한 그리움을 들춰내 사람과 삶의 마음에 위안을 주고 공유하는 일을 하는 것이 시인의 묵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불쑥 달려드는 시상을 달래며 오롯이 시인의 길을 걷는 익산 문단의 대부 격인 채규판(70,원광대학교 명예교수)시인을 만났다.
문학을 찾아 길을 나서다
1940년 채규판(70. 원광대학교 명예교수)시인은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 아버지채뇌성 어미니최정순씨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사일을 했지만 부족한 살림은 아니어서 잘살지는 필요한 학교에 진학할 정도는 되었다. 중학교말 무렵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자신의 내면의 맑은 물을 퍼 올리는 계기가 된다.
그저 친구들과 같이 글로 쓰고 문학적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문학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훈 선생님을 만나면 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정훈 선생님이 사시는 대전으로 무작정 대전고등학교에 진학 하였다.
장남인 채규판이 하고자하는 공부를 굳이 마다하지 않으시고 하숙을 시켜준다.
“대전에 ‘버들령’ 이라는 문학모임이 있었지. 대전에 있는 문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데 호서대학교 초대학장을 역임한 정훈 선생님을 만나게 됐지. 내가 문학의 기초를 가다듬는 중요한 시절이었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서 자신들이 지어온 시작품등을 품평회를 갖고 선생님이 지적하고 교정해주는 방식의 수업이었어. 아마 지방에서는 최초로 우리 고등학생 동인들이 문학의 밤을 연례행사로 열었지.” 하시며 당시를 소회하는 채규판 시인은 멋모르고 글을 지어내던 때가 사뭇 그리운 눈치였다.
당시에는 글을 실을 수 있는 중앙지는[여원][중앙일보][일요신문]등이었는데 자신들의 작품을 이들은 전부가 가명으로 제출 하였다고 한다. “ 당시는 선생님 알기를 하늘 같이하던 시절이라 너무 주제 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자기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잡지에 보내야 했어. 그 당시 내 가명이 ‘채향’ 이였어.” 그가 실명을 쓸 때 까지 ‘채향’으로 활동을 하면서 [중앙일보] [일요신문]등에서 입선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어울린 문인들로는 이덕영. 송유화시인, 우리문학 주간인 윤채환, 장지근, 김지흥 소설가, 평론에 임선우 단국대교수등이 이었다고 한다. 채시인의 호 金烏가 정훈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멈추었던 길을 다시 길을 걷다
고등학교 3학년에 형편으로 인하여 다시 고향 옥구로 내려온 채 시인은 서울 중앙대학교 에 문학과는 무관한 분야에 진학하여 공부 하던 중 4.19를 만난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그 사태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채 시인은 1960년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재입학을 하게 되어 오늘의 채규판이 있게 되는 일대 변환점이 된다.
대학교 학창시절 20여명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경강’이라는 문학 동인이 결성된다. 이 단체는 채 시인이 졸업한 후에 지역 기성작가들이 합류하여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1964년 대학시절[어느 개선]이라는 작품으로 최초의 원광문학상 수상하면서 그 작품성에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문학상을 수상하뒿어도 등단이 되지 안했다. 대학교를 마치고 신춘문예에 몇 차례 응모한끝에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바람 속에 서서]라는 작품으로 문단계의 명실상부한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1954년에서 1966년까지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된 20여명의 시인이 결속하여[신춘시]라는 문학지를 만들고 동인활동을 하다가 1969년 말 작가들이 각자의 길을 걷고 결속이 이완되면서 폐간하였다. “ 당시에는 유력문학지로 각광받았는데 갈수록 문예지들이 많이 나오고 문인들도 제 길을 걷다보니 그렇게 되었지.”
그는 66년 논산에 있는 인수중학교를 시작으로 만경여고, 군산동고, 군산실업전문대를 거쳐 1980년에 원광대학교에 재직하게 된다.
그러면서 더욱 문단활동을 하였는데 시는 물론 시조와 평론에 일가견을 갖추게 된다.
당시 채 시인이 원광대학교에 부임 전에는 등단작가가 40여명이었는데 그가 취임하면서 200여명이 등단을 하게 되는 등 지역 국문학에 등단 작가를 많이 배출시키는 명성을 얻는다.
보령개회공원에는 국내 45인 육필시가 선정되어 시비가 있고 안도현 시인이나 이정화시인들도 채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들이다.
“시” 하찮으면서도 거창한 것
시는 은유의 세계라고 한다. 시는 은유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은유는 시의 본질인 만큼 은유를 이해해야만 시가 쉬워진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는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고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겉꾸밈이 아니라 참된 마음이 깃든 시를 써야한다.
시 속에서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좋은 시란 운문으로서의 운율적 요소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인식 내용을 보여주는 작품 일 것이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시인이라며 누구나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하나쯤은 꿈꿀 것이다. 그래서 시를 짓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혹은 엄청난 고뇌의 산물일 것이다.
“우리 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사실 새벽에 잠이 없습니다. 아마 그때가 시상을 떠올리고 작품을 정리하는 시점으로는 적당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요한 새벽을 이용하는 문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는 언제 어디서는 느닷없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다. “사람의 사고 그리고 자기 체험에서 알고 있는 사실의 발견 등을 글로 표현해나는 것이지 말지 못하는 것을 가설적으로 아는 체하면서는 제대로 된 글이 나타날 수 없지.”
그러면서 작품 구상에 있어서는 어떤 대상의 관찰력을 집중하고 문학기행 체험 등에서 많은 소재를 얻을 수 있다고 현장 답사 등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한다.
45여년의 문인의 삶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연을 맷은 분들과 교감을 하면서 후진에게 좋을 글 짓는데 자문과 훈수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가람과 익산의 문학
“익산은 무엇보다도 가람이병기선생의 탄생지이고 임종하시고 묘소까지 뒤뜰에 있을 정도고 일기를 시조로 쓸 정도로 생활화 하신분인데 우리 익산 문인들의 자부심이 아닐 수 없어. 이병기 선생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설 때 시조의 현대적 작업을 하여 현대시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문단의 거목이지.”
가람문학관 건립등이 추진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자료를 제대로 구비해야 할 것인데 염려스럽단다.
익산에서 문인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익산문인협회 소속을 포함하여 200여명이 된다고 한다. 익산의 문인들은 어느 곳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언어감각이 뛰어나고 특출한 시상과 완성도가 좋다고 평가하면서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작품을 쓰고 발전시키는데 마음을 매진한다면 아마 4-5년 뒤에는 문단에 주목할 만한 인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채 시인은 작금의 지역 문단 현실에 실망감이 적지 안 않다고 피력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문인은 글로 말하고 주어진 일에는 순리를 따르면 된다는 것을 마치 자신을 억지로 내세우고 사사로운 아집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잇는 것 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한다.
문학 활동에 있어서 좀 더 작품 같은 마음의 의식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이 시사될 때 문학은 아름답게 가꾸어진다고 한다.
문학인이라면 인간성 회복대상 사람을 가꾸고 키우는데 매진해야 하는 풍토가 지나친 이기주의로 퇴색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시나 학문은 감각이 뛰어나고 이론도 겸비해야 함에도 작품을 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자신의 욕망에 취해 있는 문인들을 의식을 좀 더 전환을 가져야한다.
가람선생의 탄생지로서 어느 단체보다도 지적이고 화목해야 할 문인들이 자신의 이기주위에 취해 남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올바르지 않다고 보며 이런 것은 관청에서도 일조한 것으로 생각해본다고 한다.
그런 분의 업적을 이어받아 갈고 닥은 탄탄한 작품으로 말해야 하며 사사로운 자신의 욕심에서 남에게 고통을 주는 현실을 서로가 갖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다고 일침 한다.
채규판이 걸어 온 길
부인 김송자(69)씨와의 1남3녀를 두었다.
1964년 원광문학상을 수상한다. 1979년 전라문학상을 시작으로 이상화 문학상, 한국시 문학상, 평론가문학상, 불교문학상, 김만중 문학상, 백양촌문학상, 등을 수상한다.
저서로는 한국비교 시인론, 한국 현대시 사설연구, 채규판 시선집 총4권, 채규판 시조전집 , 문학전집 총6권, 등이 있으며 활동으로는 한국문인협회, 고문 펜 문학회, 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 한맥, 한국시, 해동, 한울, 한올문학지 운영위원등을 역임하고 있으며 익산지역문단의 구심정은 물론 중앙문단에서도 식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는 채시인은 원광대학교를 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있으며 현재도 문학 강의로 후진양성에 열중을 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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