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매에 장사 없고, 술에 장사 없다’는 것은 세상을 깊고 오래 살아온 어른들의 진리 같은 말씀이다. 여기에 ‘세월에 장사 없다.’는 것도 진리다. 흘러가는 세월에 누가 감히 맞설 수 있을까. 아무도 맞설 수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청춘들이 세월을 거스르며 늙지 않을 것처럼 호기를 부린다. 청춘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꿈꾸다 깨어나면 또 거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숨 가쁘게 보내며 의식 없는 시간이 쌓여서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서 사십, 오십 인생이 되었음을 느낀다. 세월이 흘러 나이만 쌓였음을 느꼈지 정작 자기 인생에는 느낌표가 없음을 육십, 칠십이 되어서야 느낀다고 한다.
인생이라는 긴 관점에서 중년인 40대와 50대는 지식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나이이다. 어떤 직종에 있든 이 나이가 되면 의사결정의 권한이 있는 자리에 앉게 된다.
이때 20대에 얻은 전문 지식과 30대에 얻은 경험을 통해 쌓인 지혜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학자들도 40~50대의 나이가 되어서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장 좋은 논문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이 50세에 이르면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의 지천명(地天命)이라 한다. 지천명이 되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승부는 대부분 40대와 50대 사이에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때가 되면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간다는 천리(天理)를 터득하게 된다. 사랑도 받던 시기에서 되돌려 주는 시기로 전환되고 거룩한 책임감도 생긴다.
또 이 시기에는 많은 눈물을 가지고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주변의 가슴 아픈 사연이라도 모두 내 사연이 되어버리고, 훈훈한 정이 오가는 감동 어린 현장에는 언제나 함께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운다. 그게 나이 듦에 대한 선물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제 등산을 해도 정상을 오르겠다는 사사로운 욕심보다는 맑은 공기 마시며 사색하고 명상하는 게 더 좋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꿈을 꾸고 가슴으로 잊어가며 살고, 또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지도 모른다.
청년 시절에 ‘저건, 이건, 또 그건, 왜 그럴까?, 뭐가요?’하며 물음표를 많이 던질수록 삶이 좀 더 진지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년에는 삶의 전반에 느낌표를 많이 부여할수록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가슴을 울리는 것은 역시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이다. 마음의 운동인 감동이 출렁거릴 때 엔돌핀과 다이돌핀 두 자매는 가슴 속에서 하루 종일 뛰놀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세월이 흘러서만 늙는 게 아니라 이상이 없어도 늙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상만큼은 항상 ‘오~ 십대!’를 부르짖어야 한다. 누구나 나이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만은 ‘오십대’가 아니라 ‘오~ 십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도 마음만은 늙지 않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느낌표(!)는 감동이다. 이 세상에서 정말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행복의 척도는 우리가 삶 속에서 느낌표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이다. 아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인 ‘앗 싸~’, ‘아하!’, ‘그렇구나!’, ‘좋아!’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감동과 감탄 속에 행복이 커가는 법이다. 청춘이 물음표로 가득한 인생이었다면 중년은 느낌표가 수북한 인생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때문에 자기가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생 같이 어울리고 놀 수 있는 사람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노후 준비'는 없다. 그래서 친구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한다. 여기에 취미가 같으면 금상첨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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