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rnrnrn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rn | | ⓒ 익산신문 | 입속에는 혀(舌)와 이(齒)가 있다. ‘혀’는 뼈가 아닌 부드러운 살로만 이뤄졌지만 ‘이’는 쇠로 된 병마개까지 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뼈로 되어 있다.
그 둘이 평생 겨뤘을 때 최종 승자는 무엇일까? 대부분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답은 ‘혀’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이’는 썩고 부러져 없어지지만 ‘혀’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중국의 철학자였던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이었다. 상용이 늙고 병들어 숨을 거두려고 할 때, 노자가 곁에서 임종을 지켜보면서 스승님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상용이 입을 크게 벌리며 묻기를 “내 입속에 무엇이 보이느냐?” 노자는 “혀가 보입니다.” 상용이 다시 “이는 보이느냐?” 노자는 “스승님의 이는 다 빠지고 남아있지 않습니다.”
상용이 “그렇다”고 하자, 노자가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라고 대답했다. 상용이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 줄게 없구나”하며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는 ‘부드럽고 약하게 보이고 겸손하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다.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강한 것은 다른 것을 부수지만 결국은 먼저 깨지고 부서지고 만다. 부드러움이라야 오래간다. 법정 스님도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라고 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은 과거의 수직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마음을 열고 신뢰와 존경을 쌓는 수평관계를 추구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최후에 웃는 자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람인 것이다.
스포츠게임이나 직장 생활을 하며 부득이 친구 간에 또는 동료 간에 선의의 경쟁을 할 때가 있다. 또 건설공사나 물품 입찰에서 회사 간에 경쟁도 종종 있다. 물론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며, 경쟁이 끝나면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야 한다.
패자도 승자를 축하해주는 페어플레이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간혹 목격하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패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화 단절은 물론 상대와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의 협량한 도량에 실망을 넘어 측은함마저 들게 한다.
본인은 소신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고집을 넘어 아집에 불과하다. 즉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기만을 내세우는 속 좁은 태도이다.
그래도 고집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조금 느껴지지만, 아집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자신만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행동이다. 이는 올바르지도 않고 자신을 파멸로 몰며 남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부드러움이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부드러움’이다. 이들은 결코 큰소리치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참나무와 갈대 중 하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참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커다란 독수리가 가지에 내려앉아도 끄떡없다.
반면 갈대는 잔잔한 바람에도 고개를 숙여야 하고, 작은 굴뚝새 한 마리가 앉아 쉬는 것도 버겁다. 그러나 강한 태풍이 불어왔을 때 참나무는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지지만, 갈대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우리 삶에도 가끔은 온몸이 휘청거리고 뿌리 채 흔들릴 만큼 강한 태풍이 불어올 때가 있다. 큰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은 갈대처럼 자신의 의지를 부드럽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가장 단단한 성공은 가장 부드러운 힘이 결정한다. 부드러운 ‘혀’가 단단한 ‘이’를 이기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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