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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근우회 창립을 주도하고 민족차별에 맞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박원희·김영순·조복금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박원희 선생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여성동우회’를 조직하고 활동했습니다.
1926년 중앙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한 뒤, 1927년 근우회 발기총회에서 21명의 준비위원에 선임되었으며, 교양부원으로 활동하며 10월 진행된 강연에서 일제의 경제 침탈과 조선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경찰서에 연행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김영순 선생은 정신여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1919년 결성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에 가입, 항일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조직 간부가 조선인 경찰에 밀고하여 일본 경찰의 조사로 실체가 드러나면서 체포되어 1920년 2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또한 근우회 학생부 설립 운영, 선전일의 책자 제작·보급, 지회 설치를 위한 강연회 활동 등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습니다.
조복금 선생은 1911년 진주여자잠업강습소를 졸업, 1928년 7월 하동청년동맹여자지부 하동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서무재정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1930년 근우회 하동지회의 전국 대의원에, 6월에는 하동청년동맹 집행위원 겸 여자부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부산에 있는 조선방직회사 직공이 되어 노동항일운동에 참여했고, 1931년 6월 ‘노동자(勞動者)’라는 신문과 격문을 인쇄하여 각 공장의 노동자에게 배포했습니다. 8월에는 일명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 사건으로 송치되어 징역 5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박원희 선생은 2000년, 김영순 선생은 1990년, 조복금 선생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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