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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선생을 202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세분의 선생은 1931~1932년에 걸쳐 제주도 일대 해녀들을 중심으로 일제와 해녀조합의 수탈과 착취에 항거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분들입니다.
세분의 선생 모두 제주도 구좌면 출생으로 가족 생계에 보탬을 위해 어린 나이에 해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여성이라면 해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고 선생들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함께 공부하고 근대 항일·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 해녀조합의 해조류 부정판매에 항의하던 하도리 청년들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해녀들도 함께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 1월 12일 제주도사(현 제주도지사) 겸 해녀조합장이 순시하러 구좌면에 오는 날에 제주 일대 해녀들이 호미와 비창을 휘두르며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세분의 선생은 해녀들을 규합하며 시위에 앞장섰고, “도사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등의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제주도사와 직접 협상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사가 돌아간 이후 일제는 무장경찰을 출동시켜 34명의 해녀 주동자들과 수십명의 청년들을 체포했습니다.
세분의 선생은 경찰에 체포되어 수 개월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고, 부덕량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하여 28세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의 부당한 경제적 차별과 수탈에 저항한 조직적인 투쟁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부춘화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부덕량 선생에게는 2005년 건국포장을 각각 추서했으며, 김옥련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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