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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김철모 시인 | | ⓒ 익산신문 | 우리 집에는 길냥이 네 마리가 살고 있다. 의식주를 주인에게 의탁하면서 쥐와 야합하지 않고 종종 쥐를 잡아 밥값을 톡톡히 한다. 그러니 우리 집에는 쥐가 없다. 2021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
즉 요즘 우리나라 현 시국을 보면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되었다’는 평이다. 묘서동처를 선정한 이유로 각처 각 곳이 여야 간 입법, 사법, 행정의 잣대를 의심하며 불공정하다는 시비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묘서동처의 출처는 중국 후진 때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와 북송 때 수정한 신당서(新唐書)에 묘서동유(猫鼠同乳)가 나오는데 이는 ‘고양이와 쥐가 같이 젖을 먹는다’라는 말이 함께 나온다.
한 지방 군인이 자신의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빠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의 상관은 그 쥐와 고양이를 임금에게 바쳤다. 중앙관리들은 그 모습을 보며 복이 들어온다며 기뻐했지만 한 관리만은 ‘도둑인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손을 잡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정신을 잃었다’라고 한탄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형국을 보면 정부나 정당이나 모두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더군다나 대선정국에 들어서면서 그 증상이 더 심해지고 대통령 후보들 모두 국민의 비 호감의 수치가 하늘을 찌르는 걸 보더라도 국민의 현 시국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의 생업과 생명을 담보로 자랑하던 K방역은 요즘 상황으로는 실패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적기 백신확보와 위중증 환자에 대한 병상 확보 등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안하다 보니 그간 5천명 넘는 희생자가 뒤따랐다.
다시 강화된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들은 길거리로 나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코로나 사망자를 무덤덤하게 지켜보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어느 사고 현장에서 하루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면 정부가 지금처럼 담담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묻고 싶다. 좀 가졌다는 사람들끼리 치고 박고하는 동안에 맥없는 국민들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생이별을 하고 있으니 어느 시대 때 이런 일이 있었을까 싶다.
대장동 사건도 그렇다. 수천억의 이익을 얻은 자는 버젓이 존재하는데 이들에게 부당이익을 얻도록 설계하고, 기획하고 도와 준 자는 숨어 있다. 이러니 애먼 사람 둘이나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정작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숨어버리고 책임을 실무자 비리 정도로 미뤄버리니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참으로 딱하다. 당시 의사결정과정에 있었던 사람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검찰수사는 오리무중이고 또 특검은 말로만 인심 쓰고 있다.
보통 쥐는 굴을 파고 들어와 곡식을 훔쳐 먹고 고양이는 이 쥐를 잡는 원수지간이건만 위나 아래나 벼슬아치들이 부정 결탁하여 나쁜 짓을 저지르고 책임은 지지 않고 있으니 국민적 시각으로는 그 자(者)가 그 자(者)인 묘서동처(猫鼠同處)인 것이다.
2019년 사자성어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져 나라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한탄의 공명지조(共命之鳥)였다. 2020년은 아시타비(我是他非)로 내로남불의 정국을 질타했는데 이번에는 우리 집 길냥이 보다 못한 현 시국이라는 점에서 묘서동처는 현 상황을 제대로 표현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제발 2022년은 호랑이의 기운으로 환한 세상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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