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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을 구성하는 소품 중에 ‘전집’이 있다. 당시 아버님이 월부로 사들여 집안 책장에 꽂혀있던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전집’ 그리고 ‘플루타루크영웅전’과 같은 책들을 읽으며 나는 성장했고, 지금도 그때 읽은 책들의 내용이나 문구 중 일부분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고교 시절, 우리 익산은 전국적인 문학 명문 도시였다. 그게 얼마나 내게 뿌듯한 자부심을 줬는지 모른다.
특히 익산과 연고가 있는 문인들의 이름을 나는 내 가족의 이름처럼 소중히 생각하며 그들을 우선 책으로 만나고, 또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문학강연회나 출판기념회 자리의 한 귀퉁이를 지키며 책에서 받은 감동이 더욱 배가되는 경험을 하곤 했었다.
우리 익산은 ‘서동요’의 작자 백제 무왕, 조선조의 대문장가 양곡 소세양을 낳은 땅이고 한국 현대시조의 중흥을 이끈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1970~80년대, 원광대는 전국적으로 문인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 명성이 자자했다.
고교 시절 은사였던 이광웅 시인을 통해 남성고와 원광대의 빛나는 문학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알게 된 안도현 시인과는 친형제처럼 지내며 자주 문학계 소식을 접하곤 했다.
요즘, 이와 같이 빛나던 익산의 문학 전통이 조금씩 퇴색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 문학 소년 시절, 나의 영웅이었던 선배들은 노쇠하고 익산이 자랑스럽고 위대한 문학도시였다는 것을 지난 시절의 일로 치부하는 이들을 보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내 마음 한구석에 섭섭함이 찾아든다.
한 도시의 정체성은 그 도시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무엇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에서부터 형성된다. 백제의 왕도였던 익산, 철도도시 익산, 교육도시 익산에 대한 시민의 자부심이 곧 익산의 정체성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우리 익산이 우리가 보유한 익산의 문학적 자산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도시의 문화정체성의 핵심적 요소로 받아들이길 희망한다.
문학강연회나 찾아가는 문학교실, 북 콘서트와 같은 문학 활동이 연이어지고, 익산 근현대문학관과 같은 ‘라키비움’ 시설이 생겨 익산에 연고를 둔 문학인들을 기림과 동시에 미래 문학세대의 발굴이 활발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원광대 문학 중흥기를 이끄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문예장학생’과 같은 제도의 부활을 익산시민들이 함께 논의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세계적인 문학 도시들을 살펴보면 그 지역에서 좋은 작가나 작품이 나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이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아이오와 시티’와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특출한 작가나 작품을 배출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작가들을 초청해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학 행사를 꾸준히 꾸려가던 끝에 유네스코 지정 ‘문학의 도시’로 선정됐다.
우리 익산 역시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전통을 깊이 있게 연결하는 움직임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음악, 미술, 체육…. 한 도시의 아름다움과 품위는 그 도시의 문화적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문화 수준이 높은 익산, 문화 창조자들의 도시 익산, 문화 소비의 새로운 양상을 선보이는 도시 익산을 향한 다양한 논의가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그 논의의 첫 출발을 문학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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