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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홍만식·이상철·김봉학·이건석 선생을 2021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네 분의 선생은 일제가 1905년 11월 17일에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이에 통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홍만식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라며 의관을 차려입고 독약을 삼켜 순국으로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선생의 순국은 고관을 지낸 인사의 순국으로서 가장 빨랐습니다. 고종은 특별히 종1품 의정부 참정대신의 직함을 추증하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상철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민영환 선생 등의 자결 소식이 들려오자 뒤를 이어 약을 먹고 30세의 나이로 자결 순국했습니다.
고종은 “학부 주사 이상철이 충의와 울분이 격발하여 강개한 심정에 목숨을 끊었다”라며 선생의 순국을 애도했습니다.
김봉학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군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했지만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자결 순국했습니다. 고종은 선생을 법부 참서관에 추증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선생이 순국하여 국민들에게 충의를 알리고 군대에 모범을 남겼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이건석 선생은 을사늑약 이전인 1905년 10월경에도 경운궁 대안문 앞에 엎드려 “일본과 조약을 체결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고종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일본군사령부에 체포된 후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옥중에서 피틀 토하고 순국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홍만식 선생, 이상철 선생과 김봉학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그리고 이건석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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