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10-08 오후 05:36:06 전체기사보기 원격
전체기사
커뮤니티
 
뉴스 > 만나고싶었습니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김민수 시인이 만난 익산의 문화예술인 - 이리줄풍류 김규수 선생
藝로서 절제하고 樂으로 화평 다스려

예술인이기 전에 올곧은 사람이 돼야

방탕 어린시절 접고 풍류객으로 새 삶

장애인 아들 보살피며 세상이치 깨달아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09년 01월 05일(월) 11:12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도포자락 날리는 훤칠한 선골풍(仙骨風)의 풍류객은 ‘소리를 樂’으로 삼고 살아왔다.
하늘을 섬기는 도(道)와 예(藝)로써 절제하고 락(樂)으로 화평을 다스린다고 강조하는 이시대의 풍류인 김규수(85ㆍ중요문화재83-나호) 거문고 명인을 만난다.

#방황하던 나그네 ‘거문고’를 만나다

매주 토요일이면 이리줄풍류 전수관에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국악의 향기가 퍼진다. 전수회원들은 거의가 몇 십 년을 거친 풍류객들이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김규수 선생도 열외 없이 거문고 합주를 하고 있다.
김규수 선생은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에서 7남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사일을 하던 부모 형제 중 예술의 끼를 찾을 수 없는 집안 내력이었고, 자신도 예술의 길을 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안했다.
한학과 시조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은 학교는 근처도 가보지도 못했다.
15살 때 일찍이 결혼한 김규수 선생은 6.25를 지내고 27세부터 집안 일은 고사하고 방황을 하며 가정을 멀리했다. 방황은 3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허송세월을 보내 던 중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친구 김동문에게 읍내에 와보라는 연락을 받는다.
가야금 3대를 장만해놓고는 가야금을 배우자고 제안했다. 그 길로 다른 친구 한명과 셋이서 가야금을 만나게 된다.
“전석동이라는 선생한테 배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호남풍류 시조격인 유명한 전계남 선생의 장남이었어. 거문고, 대금 피리도 한가락 하던 분이었지. 그 양반은 가야금을 타는 것 같지 않고 마치 스승이나 부모로부터 교훈을 듣는 것 같았지”라고 회고한다.
김규수 선생은 이 때 부안에 살고 있던 시조창의 대가인 석암 정경태 선생과 어울리기도 했다.
 

#거문고 타고 이리풍류를 접하다
 
김규수 선생은 48세 때에 처남을 따라 익산(이리)로 이사를 와 당시 청파 강낙승 선생님 등이 참가한 ‘이리율림계’에 참여한다. 한 때는 이리국악원에서 북을 배운다고 그쪽에 정신이 팔려 줄풍류를 소홀히 하였던 것이 있다.  이리율계의 후신인 이리정학회에 참여하면서 회장도 역임했고, 강낙승선생과 어울리면서 이론적인 학습을 익혀 실기와 이론 겸비에 도움이 됐다.
지금도 현존하는 주현동 경로당 자리는 당시 이리(익산)의 내로라하는 예인들이 어울리는 자리였다.
선생은 합주 할 때는 이리율제에 맞게 타지만 가르칠 때는 김병두 선생에게 배운 가락을 많이 전수하는 스타일이다. 김규수 선생 만의 독특하고 멋진 가락이 있는 것.

#이리향제 줄풍류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가 주가 되면 줄풍류이요, 향피리와 같은 관악기가 주가 되면 대풍류라 했다. 줄풍류는 절제미가 뛰어난 실내악이다.
김규수 선생은 “이리줄풍류는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추고 있는데 특유의 잔가락 등을 넣어  풍성하고 방대한 음악으로 전승 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지”라고 말한다.
지방에 전승되는 현악영산회상을 향제줄풍류라 이른다고 한다.
1958년 채규환 씨 집에서 시작한 이리율림에 강낙승 이보한 씨등 15명이 참석하고 풍류를 즐겼다. 1968년 이리정악원 설입 인가를 받았으나 회원이 줄어들어 전승에 어려워지자 1972년 이리정악회로 활동하며 강낙승 이보한 김규수 씨 등이 재건에 동참해 1987년 보존회 결성으로 문화재지정과 현재에 이른다.
#자기수양이 음악이지
 
김규수 선생은 이수자, 조교자를 거쳐 2003년 중앙문화재 이리향제 줄풍류 보유자로 지정된다.
“남보다 좀 일찍 했을 뿐인데 부끄럽다”고 말하는 김규수 선생에 문화재 지정이 후 달라진 것을 묻자 “잘하지 못해 더 연습을 해야 한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김규수 선생은 “줄풍류는 선비들이 즐겼던 음악”이라며 “돈벌이 보다는 자기수양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지금도 배우는 중…장애인 아들과 지내
지금도 무대에서면 자신이 없다고 겸손해 한다. 독주 할 때는 괜찮은데 합주하고 무대에서면 평소의 기량이 맘먹은 대로 나오질 않아 오그라진다.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은 정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규수 선생은 3남 3녀를 두었다. 장남 김병택(61) 씨는 5살 때 뇌수종을 앓아 말을 못하는 청각장애가 됐다.
6년 전에 아들 따라 서울로 이사를 한 후에도 이리줄풍류 공연은 물론 연습이 있는 날이면 거르지 않고 익산에 온다.
예술인이 되기 전에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규수 선생은 “음악하는 것은 즐거워도 음탕하지 않으며, 내 일생이 슬퍼도 몸이 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늙기 전에 제대로 된 제자를 만나 서로 연구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한다. /김민수 기자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 Copyrights ⓒ익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익산 원도심, 문화산업으로 다시 뛴..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익산 인재 ..
"NS푸드페스타 어디서 열릴까?"…익..
익산시, 미륵사지휴게소 '로컬푸드 ..
신흥, 익산 아동 과자 선물꾸러미 3..
한국여성유권자 전북연맹, 익산 한..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에 휴식과..
최정호 시장 "전임 시장 행적 지우..
익산상공회의소 근본적 체질개선 급..
익산영신교회, 모현동 청소년 위해 ..
최신뉴스
식품진흥원, 왕궁면민의날 행사에 ..  
이웃에 따뜻한 한끼, 마동 '사랑의..  
평화동에 이어진 나눔…이웃돌봄부..  
남중동 주민자치위원회, 연탄 500..  
원광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2..  
월 15만원 장학재단 기숙사, 저소..  
익산소방서, ‘골든타임’ 비응급..  
익산 공공기관, 울타리 넘어 ‘청..  
정원상 시의원, 시민 다친 파손 인..  
익산여성단체협의회 전통장류 담그..  
㈜원진알미늄, 취약계층에 라면 50..  
‘북딜리버리’ 운영 개선 취지는 ..  
익산산립조합 봉사단, 다이로움 배..  
울트라마라톤 모은 310만원, 시각..  
아이빛유치원, 작은 손길 모아 따..  
인사말 연혁 편집규약 윤리실천요강 광고판매윤리강령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익산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3-81-34955/ 주소: 전북 익산시 인북로 190-1(남중동) / 발행인.편집인: 박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규
mail: ikpress@naver.com / Tel: 063-841-1221 / Fax : 063-856-2625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북 다011187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