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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시인이 만난 익산의 문화예술인 - 이리줄풍류 김규수 선생
藝로서 절제하고 樂으로 화평 다스려
예술인이기 전에 올곧은 사람이 돼야
방탕 어린시절 접고 풍류객으로 새 삶
장애인 아들 보살피며 세상이치 깨달아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09년 01월 05일(월)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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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자락 날리는 훤칠한 선골풍(仙骨風)의 풍류객은 ‘소리를 樂’으로 삼고 살아왔다.
하늘을 섬기는 도(道)와 예(藝)로써 절제하고 락(樂)으로 화평을 다스린다고 강조하는 이시대의 풍류인 김규수(85ㆍ중요문화재83-나호) 거문고 명인을 만난다.
#방황하던 나그네 ‘거문고’를 만나다
매주 토요일이면 이리줄풍류 전수관에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국악의 향기가 퍼진다. 전수회원들은 거의가 몇 십 년을 거친 풍류객들이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김규수 선생도 열외 없이 거문고 합주를 하고 있다.
김규수 선생은 부안군 주산면 소산리에서 7남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사일을 하던 부모 형제 중 예술의 끼를 찾을 수 없는 집안 내력이었고, 자신도 예술의 길을 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안했다.
한학과 시조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은 학교는 근처도 가보지도 못했다.
15살 때 일찍이 결혼한 김규수 선생은 6.25를 지내고 27세부터 집안 일은 고사하고 방황을 하며 가정을 멀리했다. 방황은 3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허송세월을 보내 던 중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친구 김동문에게 읍내에 와보라는 연락을 받는다.
가야금 3대를 장만해놓고는 가야금을 배우자고 제안했다. 그 길로 다른 친구 한명과 셋이서 가야금을 만나게 된다.
“전석동이라는 선생한테 배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호남풍류 시조격인 유명한 전계남 선생의 장남이었어. 거문고, 대금 피리도 한가락 하던 분이었지. 그 양반은 가야금을 타는 것 같지 않고 마치 스승이나 부모로부터 교훈을 듣는 것 같았지”라고 회고한다.
김규수 선생은 이 때 부안에 살고 있던 시조창의 대가인 석암 정경태 선생과 어울리기도 했다.
#거문고 타고 이리풍류를 접하다
김규수 선생은 48세 때에 처남을 따라 익산(이리)로 이사를 와 당시 청파 강낙승 선생님 등이 참가한 ‘이리율림계’에 참여한다. 한 때는 이리국악원에서 북을 배운다고 그쪽에 정신이 팔려 줄풍류를 소홀히 하였던 것이 있다. 이리율계의 후신인 이리정학회에 참여하면서 회장도 역임했고, 강낙승선생과 어울리면서 이론적인 학습을 익혀 실기와 이론 겸비에 도움이 됐다.
지금도 현존하는 주현동 경로당 자리는 당시 이리(익산)의 내로라하는 예인들이 어울리는 자리였다.
선생은 합주 할 때는 이리율제에 맞게 타지만 가르칠 때는 김병두 선생에게 배운 가락을 많이 전수하는 스타일이다. 김규수 선생 만의 독특하고 멋진 가락이 있는 것.
#이리향제 줄풍류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가 주가 되면 줄풍류이요, 향피리와 같은 관악기가 주가 되면 대풍류라 했다. 줄풍류는 절제미가 뛰어난 실내악이다.
김규수 선생은 “이리줄풍류는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추고 있는데 특유의 잔가락 등을 넣어 풍성하고 방대한 음악으로 전승 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지”라고 말한다.
지방에 전승되는 현악영산회상을 향제줄풍류라 이른다고 한다.
1958년 채규환 씨 집에서 시작한 이리율림에 강낙승 이보한 씨등 15명이 참석하고 풍류를 즐겼다. 1968년 이리정악원 설입 인가를 받았으나 회원이 줄어들어 전승에 어려워지자 1972년 이리정악회로 활동하며 강낙승 이보한 김규수 씨 등이 재건에 동참해 1987년 보존회 결성으로 문화재지정과 현재에 이른다.
#자기수양이 음악이지
김규수 선생은 이수자, 조교자를 거쳐 2003년 중앙문화재 이리향제 줄풍류 보유자로 지정된다.
“남보다 좀 일찍 했을 뿐인데 부끄럽다”고 말하는 김규수 선생에 문화재 지정이 후 달라진 것을 묻자 “잘하지 못해 더 연습을 해야 한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김규수 선생은 “줄풍류는 선비들이 즐겼던 음악”이라며 “돈벌이 보다는 자기수양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지금도 배우는 중…장애인 아들과 지내
지금도 무대에서면 자신이 없다고 겸손해 한다. 독주 할 때는 괜찮은데 합주하고 무대에서면 평소의 기량이 맘먹은 대로 나오질 않아 오그라진다.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은 정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규수 선생은 3남 3녀를 두었다. 장남 김병택(61) 씨는 5살 때 뇌수종을 앓아 말을 못하는 청각장애가 됐다.
6년 전에 아들 따라 서울로 이사를 한 후에도 이리줄풍류 공연은 물론 연습이 있는 날이면 거르지 않고 익산에 온다.
예술인이 되기 전에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규수 선생은 “음악하는 것은 즐거워도 음탕하지 않으며, 내 일생이 슬퍼도 몸이 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늙기 전에 제대로 된 제자를 만나 서로 연구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한다.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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