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위치 :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88-1 | | ⓒ 익산신문 |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 위치하고 있는 정시해 충효비를 소개합니다.
정시해 선생은 1874년 5월 11일 전북 고창군 성송면 삼태에서 부친 정종택과 모친 거창 신씨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며 기우만과 최익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906년 봄 태인으로 최익현을 찾아가 영남의 민심 동향과 지사들의 반응을 보고하고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영남과 호남의 의병이 함께 봉기할 것을 통고하기 위해 영남으로 떠나 19일 만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최익현의 의거 소식에 모여든 지사와 포수는 지방관아의 무기를 접수하고 군량을 확보해 의병대 병력은 800여 명에 이르게 되었으며, 6월 5일 최익현 의병대의 소모장 겸 중군장으로 태인을 출발하여 6월 6일에 순창 구암사로 진을 옮기고, 이튿날 순창성 밖에서 일본군 10여 명을 사살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6월 8일에는 곡성으로 진출하였습니다.
6월 19일 순창으로 회군해 포진 중, 6월 20일 일본군과 합세한 전주·남원의 진위대와 충돌하여 총탄을 맞고 33세의 나이에 전사하였습니다. 1906년 6월 12일 순창읍성 향교 선산에 묻힌 뒤 1906년 11월에 순창에서 고향인 고창으로 이장(移葬) 되셨습니다.
정시해 선생은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 되었으며, 1994년 유해는 고창군 성송면 양사동 안산에서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제307호 유택에 이안(移安) 되셨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지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3년 5월 30일 정시해 충효비를 현충시설(관리번호51-1-26)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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