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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난치성질환자들의 열악한 치료환경과 어려운 형편을 보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하지만 그들을 도움으로써 오히려 제가 얻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지난 30여년 기나긴 시간 동안 형편이 어려운 수 백 명의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의 치료비를 자비를 털어서까지 지원해오며 희망을 선사해온 익산만남의교회 이해석(64) 목사는 그동안의 원동력을 이같이 밝혔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이해석 목사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음악교사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뒤로 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반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죠. 특히 아버님의 반대가 심하셔서, 결국 집에서 잠시 쫓겨나기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호적에서 파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싶어요.”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 목사는 남원의 지리산 자락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목회 중 우연히 만성 재생불량성 백혈병을 앓고 있던 한 여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희귀난치성질환자 돕기에 나서게 된다.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골수 이식까지 1억원이 넘는 치료비가 필요한데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픈 그 학생을 위해 헌혈증서를 모아서 가져다주는 것 밖에 없었죠.”
이 목사는 이렇게 모은 헌혈증서 120장과 자비를 털어 50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부족한 치료비를 기부해줄 후원자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주제로 세상과 마주하며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열악한 정부정책과 불우한 환경의 환자들에게도 획일적으로 부과되는 병원의 특진제 개선 등을 위해 쓴 소리를 냈다.
환자들의 치료비 지원을 위해 국내 굴지의 사업가와 고위관료 등 각계각층을 찾아가 사정해 후원자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후원회를 결성하고 환자 발굴과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지난 2003년에는 비영리법인인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귀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죠. 성경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기도하면 사람들 마음의 문이 열리고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한 번쯤 돌아볼 거라 생각했어요.”
환자 섬김을 시작한 지 30여년이 흐른 지금 이 목사에게는 다양한 별명이 생겼다.
이 목사의 끊임없는 구애에 이제 환자들의 후원자가 돼버린 사업가들과 특진요금을 자주 깎이는 병원장들에게는 ‘깡패목사’로, 그를 통해 희망을 찾게 된 500여명의 희귀난치성질환자들에게는 ‘아버지’로, 아픈 자식을 그저 바라보며 애만 타다 환하게 웃게 된 환자 가족에게는 ‘해결사’로 불리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 밖에 겨울철에는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연탄배달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이웃에 희망과 사랑, 그리고 따스함을 전하고 있다./박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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