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익산문화원장 이재호. | | ⓒ 익산신문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님의 시 풀꽃1 전문) 익산이 그렇다. 익산은 자세히 보아야 한다.
먼저 익산은 절대권력의 왕이 사랑하는 왕비와 백성을 이끌어갈 왕도를 꿈꾸던 이상적인 지역이다. 1500년 전 백제 무왕은 이곳에 꿈의 수도를 계획했고 그것을 구체화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일을 도모하는 사람의 열정 이면에는 사랑이 있다. 신라에서 데려온 사랑하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이 어쩌면 그와 같은 원대한 계획을 이끌어 가는 에너지는 아니었을까.
여기에는 우리나라 로맨스의 성지 남원 춘향전에서 볼 수 없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라는 실제 역사 기록이 있고, 엄연한 증거인 유적이 존재한다.
백제 귀족의 발원에 의해 지어졌다는 미륵사에 관한 또 다른 가설을 인정하더라도 쌍릉에 함께 안장되었다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익산 땅에서의 꿈은 얼마나 원대했는가. 동서의 대립을 불식시킬 얼마나 아름다운 평화의 꿈을 꾸었던 것일까.
오늘을 사는 익산 사람이든 옛날에 이 익산에 살아왔던 선조이든 어느 날 문득 이 땅에 찾아온 관광객이든 그들은 익산에 담겨 오래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와 왕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훌쩍 뛰어 넘어 근대 역사의 생생한 문화가 오롯이 이 익산에 남아 있다.
100년 전 동이리(동익산역) 솜리 시장에서 1919년 4.4 만세 운동이 펼쳐지기 전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은 의류와 포목을 중심으로 상업을 발달시켰다. 이곳에 은행, 관공서, 의원 등이 자리했던 생생한 흔적이 지금도 국가등록문화재 제763호로 지정되어 건축물 10채가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익산문화원은 기록문화발굴을 통해 눈에 보이는 유형의 자원에 가려져 숨어 있는 이야기 자료나 문서, 사진 등을 통해 익산의 문화기록들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힘차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냥 내 어머니가 살았고 내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셨던 그 가족 안의 이야기와 기록이 모여 익산의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고 익산 문화의 정체성에 관한 귀결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내가 재직하는 한은 이 사업은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계속 이어나가고자 한다.
현재의 익산은 어떤가. 익산에서는 어쩌면 가까운 시간에 현실이 될지도 모를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점으로 익산역을 기대해 보고 있다.
옛 이리역은 근대 이후 줄곧 교통의 요지로서의 역할을 해왔고 KTX 열차가 호남선으로 전라선으로 향하고, 서해안 시대를 맞아 군산과 새만금이 익산에 연결되어있는 현실을 볼 때 그렇게 황당한 꿈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미래의 누군가는 식품 문화의 메카인 익산의 맛있는 치킨을 한 꾸러미 사들고 그리스행 기차를 이 익산에서 탈지도 모른다.
노을 지는 어느 저녁 미륵사터를 지나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까지 달빛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해보자. 그러면 어느새 경주의 선화공주와 익산의 서동왕자가 달빛 아래 나타나 아직도 진행형인 동서 갈등에 맞서 아름다운 화해와 사랑의 노래를 불러 줄지도 모른다.
뭐 익산 사람이 아니라도 좋다. 세계유산을 즐기는 누구라도 좋다. 우리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겁고 행복하게 익산의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를 달빛 아래 오래오래 즐기며 달려보면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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