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성중 전 익산경찰서장. | | ⓒ 익산신문 | 어린 시절부터 선산에서 시제를 모실 때마다 무릎 꿇고 들어야 했던 고향 역사. 당시에는 고리타분하게 들렸지만, 중년을 넘기면서 뿌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어집니다.
익산에서 12대째 살아온 ‘광산김씨 양간공파 40대손.’ 이 역사가 저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6년 전 익산에 다시 정착하면서 고향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해집니다. 고향에서 산다는 것은 이벤트나 행사가 아닌 일상으로 사람들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분들에게 익산 맛집을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10년, 20년 후의 미래세대를 위한 관심을 가지면서 생각이 더욱 성숙해집니다.
아울러 고향에서 뼈를 묻을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웁니다. 노후 생활을 위한 주택과 요양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자신이 묻힐 묘자리에 대한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가 뼈를 묻어야 할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을 의미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수도권에서 젊은 시절을 생활하면서 고향 말투를 지키려고 했던 자존심은 고향 사람을 업신여겼던 한때의 광풍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투쟁이었습니다.
객지에 나가 살다 보면 고향 까마귀란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 시절에는 고향 가기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고향 사람 만나면 고향 까마귀 보듯 그렇게 좋았습니다.
고향에서 함께 태어나 세월을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고향 사람들끼리 한곳에서 태어나서 오순도순 함께 살아가다 보니 터놓고 살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죽어서도 고향 땅에 같이 묻힙니다.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 뼈를 묻는다는 현실 앞에서 그만큼 고향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게 되는 것입니다.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자기가 살아가야 하는 고향,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가야 할 고향이기 때문에 이웃을 해롭게 하거나 나쁘게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치단체장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판단하는 데에 ‘고향에서 나고 자란 배경’과 ‘단체장 퇴직 후에 고향을 계속 지킬지 여부’가 중요한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에 살면서 기쁜 일, 슬픈 일을 같이 나누며 정겨운 이웃들과 어울려 동고동락할 그런 사람이 고향 주민들과 함께할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You Can’t Go Home Again)는 토머스 울프의 1940년 장편소설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다시 돌아온 고향은 신흥 도시로 변하여 도시의 주민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땅 투기에 휘말렸고, 적대감이 감도는 잔인한 폭력과 협박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 도시에 적응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린 시절의 행복을 되찾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다시는 고향으로, 어린 시절로 구원의 사람에게로, 시간과 기억의 도피처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고향 상실자’로서 한없는 절망과 비애를 느낀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익산은 소설 속 내용과 무관하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찾은 이들에게 따뜻함과 행복함을 줄 수 있는 풍요롭고 여유로운 우리 익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청년과 시니어가 유턴하는 사랑스러운 도시, 재미있어 오고 싶고, 한번 오면 머물고 싶은 도시. 익산 찬가가 울려 퍼지는 멋진 도시를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하나하나 만들어나갑시다. 그리하면, 그대 언제나 고향에 머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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