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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는 사람에게 이로운 나무, 쓸모가 많은 나무이다. 잎, 줄기, 열매 어느 것이든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릴 것 하나 없는 참 좋은 나무이다.
사람도 참나무 같은 존재가 있다. 많은 장애인이 아직도 편견과 차별 속에 살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오히려 장애인들을 위한 훌륭한 정책이 많았다고 한다.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했고 장애인에 대한 범죄는 가중 처벌되었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에게 무조건 특혜만 준 것은 아니었다.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복사, 불경을 외워 읽어주는 독경사, 물건을 만드는 공방의 공인, 악기를 다루는 악공 등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을 했다.
태종 때는 명통시(明通侍)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조직하고 지원하여 가뭄 때 지내는 기우제 등 국가를 위한 행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관직 등용에도 차별이 없었다.
조선 초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허조는 척추장애인,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권균은 간질장애인,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는 지체장애인, 영조 때 대제학, 형조판서에 오른 이덕수는 청각장애인이었지만 모두 훌륭하게 자기 몫을 해낸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 또한 지금보다 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세종실록’에 전하는 박연의 상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거니와 오직 마음뿐이다.
어느 집에 금이 간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그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심지어 물을 긷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주인은 여전히 금이 간 항아리를 깨지지 않은 다른 항아리와 똑같이 아꼈다.
금이 간 항아리는 미안한 마음에 주인에게 물었다. “금이 간 저를 어찌하여 버리지 않고 계속 아껴주시는 건가요?” 주인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금이 간 항아리에 물을 길어오던 주인이 조용히 말했다. “지나온 길을 한 번 보아라.”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싱싱하게 피어있었다.
“주인님 이 깊은 산골 길가에 예쁜 꽃들이 어찌 저렇게 싱싱하게 피어있을까요?”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메마른 산길에서 너의 깨어진 틈에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당장은 쓸모가 없는 것이라도 잘 두면 소중하게 쓸데가 있다는 뜻이다. 조금 망가졌다고,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무조건 버리는 것보다, 쓸모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게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이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도 당연히 없다. 그러기에 내 모습 그대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다른 이도 나를 보듯 존중하며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존재는 우연이 아니다. 특별한 재능을 받았으며,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도시의 흙이 천편일률적인 데 반하여 농촌의 흙은 다양하다. 산의 흙이 다르고 강의 흙이 다르며, 논의 흙이 다르고 밭의 흙이 다르며, 마당의 흙이 다르고 돌담 앞 양달의 흙이 다르고 돌담 뒤 응달의 흙이 다르다. 흙의 냄새도 다르듯이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도 다르다.
그러므로 모두가 존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우리 주변에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은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다. 이들이 삶에 가능한 대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으로 함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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