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실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어떤 사진작가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원로 여배우의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고민하며 사진 촬영을 준비했지만, 혹시나 자신의 능력 부족과 사소한 실수로, 여배우의 마음에 차지 못한 사진을 찍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촬영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촬영이 다 끝나고 여배우가 그날 촬영된 사진을 한 장씩 한참을 보기 시작했다.
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잘못되었나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찍은 사진에서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여배우는 작가에게 말했다.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니 이제 제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보이네요.”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진에서 보이는 주름살은 깨끗하게 수정하겠습니다.”
그러자 여배우가 미소를 지으면서 작가에게 말했다. “아니요. 수정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제가 가장 아끼는 지금의 얼굴을 얻는데 평생이 걸렸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보니 자신의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난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증거이고, 우리가 이룬 모든 것에 대한 진정한 모습이기도 한다.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나와 똑같은 영혼을 알아보았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령세대는 존경과 배려의 대상보다는 우려와 부담의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나이 듦’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과거의 60대가 지금은 청장년이라 불리고 있고, 실제로 경제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나이 듦’의 변화를 끌어내고 있고 지금이 그런 과도기에 있다.
꼰대, 틀딱충 등 노인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풍조에 대한 우려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선 세대 간의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제로 길에서 어려움에 처한 임산부나 낯선 외국인들을 돕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 많다. 이들이 가진 이해심과 배려는 젊은 세대들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노인을 규정하는 65세의 연령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성급하게 조정하게 되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할 것이다.
수치적으로 나온 자료보다 실제 사회에서 느끼는 사회적인 간격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이 맞아 떨어지듯 대한민국에서 노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두려우면서 동시에 버거운 일이다. 청춘과 함께 살아가고 싶지만 무시당하기 일쑤고, 중장년층 역시나 노인들과 쉽사리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
나이 듦의 의미를 헤아려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고, 사회적 문제와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노년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나이 들고 늙어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하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나이든 세월을 통해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모든 것을 품고 변화시키는 넓은 품을 배울 수 있다. 비록 힘은 옛날 같지 않지만 인간을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하는 삶의 통찰력을 배울 수 있다.
노년은 주눅 드는 기간이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성숙하고 깊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황금의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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