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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일본살이는 새로운 희망과 설레임, 이질감이 뒤섞인 공존기였다. 토목지질 분야 엔지니어였던 일본인 남편을 따라 나선 이국 생활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다. 좌충우돌, 엎어지고 일어서며 하나하나 적응해 나갔다.
남편 하나 믿고 4남매 낳아 기르며 생활한지 7년여 만에 평화롭던 일상에 위기가 찾아 왔다. 한창 일할 나이인 남편이 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대장암 3기. 현지에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재발했다. 두려움이 찾아 왔다. 친정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2005년,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경기도 고양에 거주하던 친정엄마 품을 찾았으나 엄마는 엄마의 고향인 금마면으로 딸 가족을 내려 보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 먹으며 사위의 암을 치료해 보자는 심산에서였다.
병원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투병 생활을 하는 사이 자신은 올망졸망한 4남매를 기르며 생전 처음해 보는 농사에 전념했다. 그러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투병 3년만인 2007년. 남편은 어린 4남매와 서른셋의 젊은 아내를 남겨두고 떠났다. 남편 나이 37세.
갑작스럽게 찾아온 절대자의 부재는 의존적이던 아내에게 상실감과 우울감을 안겨 줬다. 세상은 온통 회색빚이었으나 덜렁 남겨진 어린 남매를 생각하니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심신을 추스르며 남편 병 구완하며 만들어 먹었던 유기농 재료의 발효식품에 눈을 돌렸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이 분야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영농조합법인 ‘4남매 황수연전통식품’은 이렇게 탄생돼 소비자의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 초기, 우선 당장 어린 새끼들과 함께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남편 투병생활 3년동안 금마의 양광을 받아가며 익어가던 40개의 항아리가 사업의 밎천이었다. 챙피함을 무릅쓰고 길거리로 나갔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직접 재배한 유기농 제품이라는 자부심 하나 믿고 간장, 된장, 청국장, 고추장 등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을 직접 담가 먹는 고수 주부들은 젊은 초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방법을 달리했다. 온라인 판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옥션과 지마켓 등에 쇼핑몰을 구축, 판매량을 늘려 나갔다.
그러던 2009년 어느날, KBS 인간극장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엄가가 달린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5부작으로 제작돼 전국의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만났다. 방영후 물건은 없어서 팔 수 없을 지경이었고 애틋한 사연을 본 일부 시청자들은 성금을 보내 오기도 했다. 폭발적 반응이 일어났다.
이 무렵, 고양에 거주하던 친정 부모님들은 아예 딸 집으로 거쳐를 옮겨 사업을 도왔다. 40개의 항아리는 900여개로 늘었고 원재재 창고와 가공실, 발효실 등을 신축, 확장해 규모를 갖췄다.
자신이 지은 농산물로는 수요를 따라 갈 수 없자 주변 농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엄선해 제품을 만들었다. 사업이 궤도에 올라 안정화 단계에 접어 들었다.
직원 6명과 함께 밤낮 없는 연구와 개발로 2개의 특허에 6개의 인증서를 갖고 있고 유기된장과 발아현미된장, 볶음고추장, 청국장가루 등 총 26개 재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소비트렌드의 변화를 읽고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고양으로 돌아갔지만 딸과 함께 발효식품을 만들고 파느라 손가락이 휘어버린 친정 부모님은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그 사이 코흘리개 1남3녀는 반듯하고 의젓한 대학생으로 자라 아빠의 빈자리를 메꾸며 엄마를 돕고 있다.
그중 아들은 대학에서 발효관련 전공을 하며 엄마의 뒤를 이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미래 발효식품 업계의 꿈나무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김관춘 기자
■황수연 대표는 누구?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서 자란 황수연 대표(46)는 대학 졸업후 일본인 남편을 따라 일본 미에현에 정착해 7년을 살았다. 현지에서 4남매를 낳아 기르다 남편의 암 치료를 위해 다시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와 친정엄마의 권유로 2005년부터 엄마 고향이던 금마면에 정착해 살고 있다.
남편과 사별후 홀로 4남매를 기르며 발효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던 모습이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직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사업에 큰 도움을 받았다.
황 대표는 그 이후부터 국민들로부터 받은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년 기부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7년여 동안 3,000여 만원 상당의 금품을 자치단체와 시설소 등에 기부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을 좋아한다.
2018년에는 경기대에서 외식경영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요즘엔 친환경 재료의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백년기업을 이어가기 위해 경영과 품질, 공간디자인 분야에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전통식품을 고집할지, 현대 소비트렌드에 맞출지, 6차 산업으로 나갈지 등을 놓고 목하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26개 생산품을 크게 줄여 핵심제품 위주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할 방침. 컨설팅을 통해 급한 성격에서 오는 사소한 버릇도 고쳤다. 통화가 끝나자 마자 먼저 끊었던 전화도 대화가 끝나고 2초 뒤에 끊는 습관으로 고친 것.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에 호감 가는 인상을 가져 주변에서 종종 사업가 체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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