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최병효(前 주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 | ⓒ 익산신문 | 지구 온난화로 예년보다 십 여일 앞서 찾아 온 봄꽃들의 향연을 찾아 3월 말일 구례구역에 내려 자전거를 타고 화엄사로 향했다. 좀 늦었지만 각황전 앞의 흑매를 보고자 함이었다.
예상대로 끝 무렵이었으나 숙종 때 심었다는 검붉은 매화의 잔영이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뒤 길상암의 홍매는 진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연기암의 철쭉은 너무 이르고 자전거로 수km를 오르기에는 시간과 힘이 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천은사로 떠났다.
5km 정도 떨어진 천은사 가는 길은 곳곳이 벚꽃터널이었다. 굳이 천은사까지 힘들게 간 까닭은 숙종 때 비운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현판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천은사 뒤편 오솔길에는 붉은 매화와 벚꽃이 한창이었고 경내에도 벚꽃과 동백꽃이 경연 중이었다.
구례로 돌아가는 길에 예기치 않게 매천 황현의 영혼을 모신 매천사를 발견하고 들러보았다. 조선의 망국 과정을 기록한 매천야록을 집필하고 자결한 곳이다.
다음 날은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페달을 밟아 곡성-남원-순창-담양으로 가니 영산강이었다. 저녁에는 지쳤지만 광주까지 가서 옛 친구와 밤새 정담을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영산강변을 따라 나주에 가니 역시 벚꽃 천지였다. 나주곰탕을 맛 본 후 영산포에서 숙박하며 생애 최고의 홍어애탕도 먹었다. 영산강의 끝은 목포였다. 산업화가 뒤진 지역이라서 도시의 발전도 낙후됐다.
70~80년대 영국에서 살 때는 봄을 알리는 노란 수선화와 튤립에 이어 배꽃, 사과꽃, 벚꽃 등 온 국토가 다양한 꽃으로 뒤덮임을 보며 과연 영국은 온 국토가 정원임을 실감하였다.
이렇게 거대한 하나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국토는 물론 오랫동안 인위적으로 세계 각국의 좋은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을 가져다 심은 결과이다. 영국에는 정원이 유난히 많은데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프랑스나 독일의 정원과는 달리 자연경관을 최대로 살린 자연풍경식 정원이 대부분이다.
내가 십수년 전 미국 LA에 부임하여 보니 미국 내에 제대로 된 한국식 정원은 하나도 없으나 일본식 정원은 수백개가 조성되어 있어 일본의 국가 이미지 향상에 큰 공헌을 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 문명권에서는 중국과 한국, 일본이 자체적인 정원양식을 주장하는데 제일 늦게 백제와 당·송에서 정원 개념을 도입하여 발전한 일본식 정원이 서양에서는 세계 최고의 정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모든 중요 도시에는 일본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 일본정원의 아름다움에 반한 미국인들 스스로 조성한 것들이다. 유명한 LA카운티 수목원에 한국정원을 조성하고자 현지 한인들과 협력하여 5천평 정도의 부지도 할애 받았다.
국내외에서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던 중에 2008년 정권 교체로 갑자기 본국으로 귀임 발령을 받아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
서양에서도 자국식 정원 역사를 가진 나라는 극소수이다. 오랜 정원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서양에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영구히 소개하도록 규모 있는 한국식 정원을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도 해방 이후 제대로 된 전통정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창덕궁 후원이나 담양 소쇄원 등 극소수의 정원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이나 가평의 자라섬에 자주 가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왜 우리는 이 넓은 부지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정원을 만들지 않나 의문이 든다.
한류를 지속적으로 세계 문화계에 소개하려면 그 뿌리가 되는 전통문화들이 현대에도 계속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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