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장성국 익산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 | ⓒ 익산신문 | 힘차게 살자. 희망차고 이상적인 말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힘이 권력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젊은 시절 심취했던 이 책의 한 글귀는 지금도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힘차게 사는 것이 권력이 될 수 있을까? 니체가 말한 ‘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환경에서나 힘은 작동한다. 정의, 공정, 평등, 기회 등도 사회에서 힘의 근원이 된다. 근원이 원리가 되어 작동하는 사회를 우리는 꿈꾼다. 순진하고 허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희망고문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모두 갈등과 좌절 속에서 성장하듯, 인간 생활을 지배하고 사회구조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직도 정의나 공평보다 권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은 정보 기술의 발달로 정보력이 권력이 되기도 하고 이가 이익구조로 이어지기도 한다. 돈의 힘, 금권의 위력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정도를 더욱 심화시킨다.
변함없이 위력을 감추지 않는 정치권력을 향한 욕심은 끝을 모른다. 정보력, 금권력, 정치권력은 대개의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세대를 초월한 욕망의 대상이다.
문제는 이를 욕망하는 크기의 정도와 사용하는 목적이다. 사람의 목숨처럼 짧기만 하고 영원하지 않은 권력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 좌절과 희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온갖 인연을 다 끌어들이고 사실과 동떨어진 비방과 모함 등 인간으로서 가장 질 떨어진 행위를 해서라도 권력을 쟁취하고 획득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권력의 기간이 끝나면 그 노력의 과거들이 스스로를 불안에 밀어 넣고, 법이나 언론의 화살이 향하는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힘을 가지고 싶어 하고 이를 갖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억울함의 눈물을 삼킨다.
인간의 권력과 욕망은 인류가 우주에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회 구조 속에서는 힘을 가진 기성세대가 ‘부모 찬스’로 이름을 바꾸어 권력을 대물림한다.
어느 부모나 자식이 잘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리라. 온갖 고생을 마다 않고 정성들여 뒷바라지 하고서 언젠가 취업이라는 권력을 얻어서 행복한 미래를 살아가길 고대한다.
그렇지만 본인의 능력으로 노력을 해보기 전에, 미리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대물림 된 ‘힘’이 권력이 될 수 있을까.
최근 각 방송사마다 앞 다투어 트롯경연대회를 방영한다. 시청자들은 구구절절한 트로트의 매력을 뽑아내는 이야기 있는 목소리들에 매혹된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무대와 수입을 독차지하는 현실 속에서도 가난함과 쪽잠에 싸우며 기나긴 고난의 무명생활을 간직하고서 도전하는 출연자들. 이들로부터 우리는 힘과 권력에 대해 배운다.
꿈과 자신에 대한 확신, 내면에서 탄탄하게 쌓아올려진 힘은 권력이 된다. 그들이 힘차게 살아나가고 있는 삶이 다른 이들을 움직인다. 그 권력에 우리는 호응과 공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스스로 찬스에 도전하는 사회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려고 하는 정신이 함께 할 때 우리의 내일은 희망으로 빛난다. 정신이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청년 스스로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로 진보해 나가길 오늘도 열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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