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채수훈 익산시 복지정책과 맞춤형복지지원계장. | | ⓒ 익산신문 | “황하정이, 지아미 고개를 얼른 넘어 여산읍을 당도하였고나. 그때의 어사또는 여산이 전라도 초입이라 서리 역졸을 각 처로 분발헐 제”
어사 이몽룡이 남원으로 내려갈 때 말한 ‘춘향가’의 한 대목이다. 여산은 익산시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호남고속도로의 여산휴게소가 있는 지역이다.
조선 때 한양에서 경기도, 충청도를 지나서 전라도 초입이 바로 여산이다. 호남의 관문이자 국도 1번지이다.
전라도 첫 고을에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여산 송씨이다. 시조는 송유익으로 고려 때 여산군의 진사로 봉해졌다. 그의 선조는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다.
장남 송유익은 여산 송씨, 차남 유천익은 은진 송씨 그리고 막내 송문익은 서산 송씨 시조가 된다. 우리나라 모든 송씨의 요람이자 연원의 시작점을 이룬다.
시조 묘는 여산면 천호산 기슭 유점마을에 있다. 누가 봐도 한눈에 명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걸지령(人傑地靈) 즉 인걸은 영검이 있는 땅에서 난다고 했는데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 왕궁면 양곡 소세양과 표옹 송영구의 묘혈까지 포함하면 익산의 대표적인 3대 명당 터라 할 수 있다. 발품을 팔아서 가보면 결코 허풍이 아니란 걸 눈치 챌 수 있다.
1999년에 시조 묘가 도굴당했는데 과히 송씨 본관 명성만큼 훔칠 것이 많았나 보다. 시조산 계곡 옆에는 재실이 있다. 여산 송씨의 성지이자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다.
여산은 조선 3대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외조부인 7세손 송선의 시조 묘가 있는 곳이기에 세종은 현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또, 숙종은 “우리 왕가의 후손들은 이 묘소의 외손이 아닌 자 없다.”며 군을 부로 승격시키면서 묘소 주위의 7리를 하사하였다.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서 동쪽에 우뚝 솟은 산이 천호산이다. 그 능선 밑 천일사, 백운사, 백련암, 문수사 골짜기 일대 약40만평이 여산 송씨 종중 산이라고 한다. 이곳을 휴양림 또는 수목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이 산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다. 노송과 여산 송씨. 낙락장송과 여산 송씨 세거지가 700년 넘도록 왜 그런지 잘 어울린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했는데, 듬직한 소나무가 마치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재실 앞에는 천호산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고인 연못이 있다. 유교 이상을 꿈꾸었다면 연못 중앙에 태극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 심어놓으면 손색이 없을 듯하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수군으로 큰 공을 세운 여산 송씨 삼 형제가 있다. 바로 송희립, 송정립, 송대립이다. 이들은 노량해전까지 참전했다. 이 형제들 사당이 전남 장흥에 있다. 뼈대 있는 가문은 역시 다르다.
한편 송상현은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재직 중 중과부적의 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현대 인물로는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그 아버지 고 송성용 서예가가 전북 출신이다. 연예인은 송해, 송혜교, 송승헌 등이 있다. 여산 가서 함부로 인물 자랑하면 낭패를 보겠다.
올해 익산시가 여산 송씨 종중 산에 천호산 등산길 조성사업에 나섰다. 재실이 있는 유점마을에서 정상까지 이르는 약 2km이다. 쾌적한 탐방로를 만들어 지역주민과 등산객들의 건강증진을 위해서다. 이는 종중에서 흔쾌히 사용 승낙을 했기에 가능했다.
여산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기 전까지 익산의 중심지였다. 현재 변방이 되어서 찾는 이가 드물지만 종중 산에 등산로가 뚫리면 그 주변이 새롭게 주목을 받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날 것이다. 여산 송씨가 익산의 옛것을 새롭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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