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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신는 최초의 신발은 동물 가죽을 발에 감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신발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
사막은 태양에 달구어진 모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덧신이, 반대로 극지방은 추위로 가죽 털신이 필요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강우량이 많고 땅이 습하여 나막신을 신었다. 우리나라는 봄가을은 맑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어 주로 짚신을 사용했다. 물론 여름철 우기에는 나막신을 신었다. 신발은 종류도 많다.
여자들이 주로 신는 하이힐이나 남자들의 가죽 구두를 비롯해서 키 높이 구두, 통굽 신발, 마사이 신발, 슬리퍼와 샌들, 어그부츠, 캔버스운동화, 플랫슈즈, 등산화와 안전화 등이 있다.
이런 신발들을 의상에 맞게 골라 신거나 편리에 따라 선택해 신는다. 아무 때나 신을 수 있는 슬리퍼가 있는가 하면 코트에 어울리는 부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와 색상이 있다. 뿐만 아니라 멋스럽다 못해 앙증맞은 신발도 있고 디자인이 멋진 신발도 있다.
신발은 직업 따라, 계절 따라, 날씨 따라 용도에 따라 구별되기도 한다. 작업장에서 안전을 지켜주는 안전화는 물론 산에 갈 때 등산화, 운동할 때 운동화, 비가 오면 우화(장화), 눈이 내리면 설화, 실내에서 신으면 실내화로 온갖 고초를 겪어도 내색하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신발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모처럼 얻어 신은 운동화가 없어진 것이다. 누군가 집어갔을 것이라는 분한 마음과 부모님께 혼날 생각을 하면 겁이 더럭 났다.
젊은 날에는 술집에서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어느 술꾼이 신발을 바꿔 신고 갔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고 갈 신발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상갓집에서 신발을 잃어버리고 상주의 신발을 빌려 신고 온 일도 있었다.
신발을 잃어버릴 때마다 요의(尿意)를 느끼고 화장실에 달려간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언젠가 퇴근길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일이 있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신발을 보면서 누군가 생을 마치고 다시는 저 신발을 신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했다.
노숙자들이나 술에 취해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도 길바닥에 신발을 공손하게 벗어놓는다. 한강철교에서 투신했다는 사람들도 신발을 나란히 벗어 놓았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이처럼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논에서 해질녘에 돌아와 평상에서 저녁밥을 먹던 아버지가 물을 찾는 것이었다. 어린 나는 평상 아래 가지런히 벗어 놓은 아버지의 신발을 신으려고 했다. 신발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코를 움켜쥐면서 본 신발은 낡아 있었다.
아버지의 신발은 내 발보다 넓고 길어서 헐렁했다. 공간만큼 아버지는 더 사신 것이다. 긁히고 닳고 흠집이 난 아버지의 신발은 신발의 상처처럼 아버지의 사랑이 절실하고 크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주인을 잃은 아버지의 신발은 자식들을 품기 위한 사랑의 공간이었음을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발은 아버지의 신발이었다.
며칠 전 현관에 벗어놓은 큰 놈의 신발이 내 신발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다. 신발에 내 발을 밀어 넣어보았다. 옛날에 내가 아버지의 신발을 신었을 때 그 헐렁한 공간이 큰놈의 신발 속에 있었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신발은 자식들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마약을 숨기는 신발이나 브루스를 추는 신발이 아니라 윤리와 청렴은 물론 신뢰와 활력으로 삶의 나침반이 되는 신발이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속이자 가장 평화로운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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