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복현 익산역사문화연구회장. | | ⓒ 익산신문 | 입추(8월 7일)가 지나기 전에 화사하게 피었어야 할 백일홍이 입추가 지나서야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대체로 백일홍은 6월에서 10월까지 그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으나 금년은 조금 늦게 피었다. 백일홍이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바라보는 마음은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줄기를 건드리면 간지럼을 탄다하여 간지럼 나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며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치밀하고 매끈한 수피를 지닌 배롱나무는 최근에는 대부분 아파트 중앙 분수대에 한그루 쯤 있어 계절의 변화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다정한 꽃이다. 그래서 백일홍을 살아있는 생체 시계라고도 하고 계절의 전령이라고도 한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피고 지기를 한 여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까닭에 백일홍 꽃만큼 자손 번성하라며 무덤가에 배롱나무를 심었고 꽃이 다 질 무렵이면 들판의 벼가 익고 쌀밥을 먹을 수 있어서 사람들은 그 꽃을 바라보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던 우리 조상들이 아끼는 나무였다.
기원과 소망이 더해져 있는 백일홍은 우리에게 더 애틋한 사랑을 받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백일홍이 금년에는 늦게 피었다. 백일홍 꽃잎이 하나 둘씩 떨어질 때가 되면 한여름을 장식했던 붉은 기운을 서서히 거두어들일 것이며 점점 피멍이 든 꽃으로 변해가며 들판의 벼는 누렇게 익어간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간세상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하지만 자연세계는 그래도 변함없이 세월이 흘러가면 자연스럽게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연이은 폭염과 가뭄으로 백일홍이 시름시름하더니 그 기세를 잃고 가지도 누렇게 말라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요즈음 보면서 이러하다 내년에는 그 붉은 백일홍 꽃을 볼 수 없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하긴 배롱나무의 백일홍 꽃뿐인가 다른 나무들 역시 싱싱하지 못하고 본연의 지태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들이 최근에 보게 된다. 이렇게 가다가는 얼마 못가서 원래의 본질이 확 바뀌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든다.
폭염과 수해와 역병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자연 속에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 속에 묻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모든 상황이 이상기후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잘 가꾼다 해도 기후가 가져다주는 변덕에는 본연의 모습을 지켜낼 수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아가 기후변화는 지금 우리 삶까지 바꾸어 놓고 있으며 종내에는 우리의 생명까지 위협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겨야 할 것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일이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인류의 재앙이라는 코로나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가가 문제다.
바이러스에게 지고 마는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귀중한 시간들이 지금 투자되고 있다.
1997년에도 ‘조류 독감’으로 홍콩,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유럽, 아프리카에 번져 1,70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2003년에는 ‘사스’가 번져 중국, 홍콩에서 치사율이 9.6%에 달했고 2009년에는 ‘신종 플루’가 번져 미국, 캘리포니아, 멕시코, 캐나다, 영국 등에서 1만8,500여명이 사망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15년 ‘메르스’가 발생해 사우디, 알제리, 한국, 태국, 튀니지, 아랍에미리트, 영국, 미국에서 8,000명 이상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도 했다.
2020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번져 그 끝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인류의 재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잠시 지나가는 유행병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무도 예측 못하는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다. 하루속히 이런 악조건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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