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고원공간정보 부회장 이태현, 전 전북도 서기관. | | ⓒ 익산신문 |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남의 말에 끝까지 귀 기울여 주는 일이다. 그렇지만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준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자기 말을 많이 하고 싶은 게 나이든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이다. 그 이유는 세상을 많이 살아봐 그 경험으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의 말을 경청하기 보다는 자신이 말을 많이 하는데 더 골몰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편견과 아집으로 남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은 더 공허해진다.
묘한 일이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거나 달래기 위해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반대로 마음은 더욱 외로움을 타게 된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결국 나를 더욱 고립시키는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정작 중요한 생각은 빠뜨리게 된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귀 기울여 들어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기만 해도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데 안 들어 줄 이유가 없다.
‘들을 청(聽)’이라는 한자를 파헤쳐 보면 이렇다.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한 일(一), 마음 심(心)으로 되어있다. 그 의미는 ‘귀를 왕처럼 크게 하고, 열 개의 눈으로 바라보듯 상대에 집중해서, 상대와 한 마음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누구든 남의 말을 제대로 듣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인격적 완성의 조건이 필요하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2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단지 들음으로써 상대방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데 이보다 더 큰 복음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좀 더 침묵해야 한다. 그것은 말과 동시에 내면의 침묵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원활한 대화를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바로 제대로 경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나 원활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원인이 자신이 말을 잘못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곧 후회를 한다. 말다툼의 원인이라는 게 모두 제 잘난 척하며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또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각인시켜 이기려는 소아적인 욕심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물고기가 물을 가장 늦게 발견한다’라는 말처럼 사람들도 늘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말하는 것이 지식의 영역이라면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온몸과 마음을 열어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면 저절로 들린다.
타인과의 대화 시에 유명한 ‘폴 틸리히’의 경청의 격언으로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듣는 것이다.”라는 기억해 둘 만한 좋은 말이 있다.
반면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무시당하고 외면까지 당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절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 안 된다. 또, 계속해서 자기 말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이 할 이야기가 있으면 바로 끊고 자신의 말을 하면 된다. ‘앤드류 카네기’의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귀와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이청득심’의 지혜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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