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 | ⓒ 익산신문 | 새싹이 자랐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한 알의 씨앗이 심겨지고 오랜 기다림 끝에 싹이 자랐다. 때를 따라 돕는 손길들이 물도 주고, 햇볕도 쬐고, 바람도 불며, 씨앗이 싹을 틔웠다. 움을 틔운 싹은 푸른 숲이 될 꿈을 꾼다. 이것이 작년 4월 13일에 개국하고 한 해를 지낸 전북극동방송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던 곳에서 방송사가 세워지고 전라북도 도민들에게 전해지는 1Kw의 전파, 어려운 난관 앞에서 끌어주고 당겨주신 선한 손길들, 그리고 전북지사 개국을 위해 6년간 전북에 살면서 전북의 딸로 불리게 된 자랑스러운 애칭까지, 모든 기억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2015년 여름, 북부시장 건너편에 위치한 익산본부의 작은 사무실로 발령을 받았다. 쉽사리 접하지 못하던 전통시장의 신명나는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첫 지방 근무를 시작했다. 낯선 곳이었지만 정이 많은 분들 덕분에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익산본부는 90w의 저출력으로 대전극동방송의 프로그램을 받아 중계를 했다. 익산 지역의 중계를 목적으로 설립된 익산본부였던지라, 익산을 살짝만 벗어나도 수신율이 떨어져 전북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었다. 사실 익산본부가 세워지기까지도 15년의 기다림이 있었고 간절함 가운데 설립이 되었지만, 막상 설립이 되고 시간이 지나니 우리 지역을 위한 자체 방송이 없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다. 매주 목요일 새벽마다 익산운영위원회 위원분들이 모여 방송사를 위해 기도했다. 더 큰 출력으로, 선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담을 수 있도록. 기도가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개소 10주년을 준비하던 2019년 가을, 정부로부터 전북극동방송 개국을 정식으로 승인 받게 됐다.
앞이 보이지 않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오랜 기다림의 끝, 갈망하고 간구하던 기도제목이 성취된 그 날. 누군가의 눈에선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전북극동방송 허가를 축하하기 위해 2018년 12월 14일, 익산실내체육관에서 감사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라북도와 전국 각지에서 8,000여 명이 모였고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함께 모두가 새로 태어날 방송국을 축하했다.
이후, 본격적인 방송을 위한 모든 장비와 송신기가 설치되고, 익산과 전주, 군산, 김제, 부안, 정읍 등 전북지역 130만 명을 대상으로 전파가 퍼져나갔다. 안 들리던 곳에서 잘 들린다는 수신 소감 메시지가 도착하고, 드디어 2019년 4월 13일, 전북극동방송은 개국을 했다.
비영리 단체로 지사의 방송국 설립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선한 일을 위해 돕는 분들이 계셨다. 소중한 꿈들이 심어졌고, FM91.1MHz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별히 명절에는 군산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해 책보내기 운동을 펼쳤으며, 외로운 독거노인 및 취약계층을 위해 라디오 보내기, 코로나19로 아파하는 대구, 경북 지역을 위해 모금 생방송을 진행했고 모금액 2,300만원 전액을 성금으로 보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라디오는 희망의 이야기를 전했고, 위축되는 이들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개국의 씨앗이 뿌려진 봄, 성장하게 되고 자란 여름, 열매 맺고 감사를 나눈 가을,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한 겨울, 그리고 다시 찾아온 봄.
지방의 라디오 방송이 이 시대에 맡은 역할이 뭘까 고민한다. 현대 과학 기술이 발달하며 편리하고 편안한 생활이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오히려 사람 사는 이야기들은 듣기 쉽지 않아졌다. 그때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이웃들의 삶의 이야기, 진솔한 사연에 함께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라디오의 매력이고 위력이다.
현재 전북극동방송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방송 비율은 67%이다. 계속해서 지역을 위한 방송사로, 지역을 담는 방송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익산의 자랑, 전북의 자랑이 되는 그 날까지.
이제 한 살, 전북극동방송은 계속 고민하고 배우며 지역의 이야기를 알리고,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조명하고, 일상 속의 친구로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기쁜 소식과 함께.
2주년에는 더 큰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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