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채수훈 익산시 맞춤형복지지원계장 | | ⓒ 익산신문 | 세계 최초 철도는 1825년에 영국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 개통되었다. 철도는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 국가로 확장되어 갔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872년에 요코하마와 신바시 사이에 최초의 철도를 개통하였다. 메이지유신 단행 후 영국 산업 기술을 발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제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철도는 일본이 1898년에 건설한 경인선이다. 일본은 한성을 중심으로 자원과 식량 수탈 및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를 위하여 거미줄 망처럼 철도를 확장해갔다. 한반도에 광복 전까지 6,362km에 이르는 철도 노선을 장악하게 되었다.
일본의 본토철도-해로-조선철도 연계체계는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이처럼 철도의 태동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의 연속선상에 놓여있었다.
익산에 철도는 언제 생겨났을까? 이 지역의 철도 변천사는 크게 3단계인 제국주의철도, 한국고속철도 그리고 유라시아 통일철도 시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단계는 일본강점기 제국주의철도 시대이다. 익산의 한적한 시골 마을 이리에 최초 군산선이 1912년에 개통되었다. 이리역(현 익산역)이 1912년에 개청하였다.
1914년에 호남선, 1936년 전라선이 개통되었다. 전북은 이리역을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철도가 놓였다. 일본은 한일강제합병 이후 군산항과 내륙을 잇는 철도교통의 중간기지로 이리역을 만들었다.
이리역은 군산선, 호남선, 전라선이 교차하는 교통거점 역이자 호남평야 물산 집산의 중심지로 변화되었다. 익산역 인근 간이역인 황등역, 동이리역, 대장촌역 등에는 일본인의 대규모 농장이 생겨났다.
이는 일본의 철도부설이 한반도 최대 곡창지역인 호남의 식량 수탈을 위한 식민도시 건설 작업의 일환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편 1914년에 이리역 승차 인원이 7만4,772명이었고, 발송화물이 1만1,826톤이었다.
이는 조선 수입의 4분의 1이자 호남선 역 중에서 1, 2위를 차지한 높은 수치이다.
2단계는 한국고속철도(KTX) 시대이다. 우리나라 최초 고속철도는 2004년에 일부 완공된 경부선이다. 호남선 고속철도는 2004년에 개통하였는데 기존 철도를 이용하여 운행하였다.
그 후 2015년에 경부선의 분기점인 오송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전라선 고속철도는 2011년에 익산역에서 여수엑스포역까지 기존 철도를 개량한 복선 전철이 개통되어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KTX의 최고속도는 시속 305km이다. 익산역에서 서울역까지 1시간 16분이 소요된다. 전국을 일일생활권 속에 국민의 삶을 초고속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이는 과거 일본이 건설한 철도 노선에서 탈피하여 우리나라의 신기술과 경제력으로 세계 5위의 고속철도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익산역은 모든 열차가 정차한다. 일일열차운행 횟수는 주말에 272회이다. 일일 평균 이용객은 1만2,000여명이고, 연578만명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전국 174개 보통역중 15번째이고 중도시에서 6번째로 많다.
3단계는 유라시아 통일철도 시대이다. 희망 사항이다. 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합성어이다. 세계육지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라시아 철도로 연결은 반드시 북한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철도는 72년간 남북분단으로 단절되어 있었다. 최근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통일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18년에 남북의 경의선·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 현지 공동 조사를 실시하였다.
두 노선 철도는 유라시아 철도의 연결고리이다. 경의선과 연결된 몽골횡단철도는 중국 단동에서 북경-울란바토르-알란우데를 거쳐 시베리아 철도와 만난다. 동해선과 연결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장정 9,297km의 세계 최대 철길이 뻗어 있다.
우리나라가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역이 된다면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게 된다. 군사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아시아 평화에 공헌한다. 무역과 자원 교류가 활발해져서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
해외여행으로 왕복이 빈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문화교류·협력도 증진될 것이다. 남쪽에 고립된 작은 섬에서 탈피하여 대륙으로 웅비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익산철도 역사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극명하고 그 족적이 뚜렷하다. 1912년 첫 철도 개통을 시작으로 108년이 되었다.
익산역은 일제강점기에 식량 수탈과 대륙침략을 위한 내륙 거점기지였다. 광복 후, 여객과 화물 운송의 플랫폼이자 1950년 이리역 폭격사건과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의 상흔도 있었다. 513만명이 거주하는 호남의 어엿한 관문역이다.
1960~80년대에는 익산역 광장에 통근 열차에서 내린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까마귀떼를 이루었다.
호남의 허파 익산역이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거점역이 되어서 세계를 누비며 기차여행을 했던 여행객들이 형형색색 캐리어떼를 밀며 구름처럼 몰려나오는 꿈을 꾸어본다.
강원도 철원의 철도중단점인 백마고지역에‘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씌어있다. 익산역 통일 철마는 북한과 평화의 물결을 타고서 몽고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질주하였듯이 세계로 달리고 싶다.
익산 시민 모두가 그 꿈 실현을 위하여 천천히 함께 손을 맞잡고 나아갔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