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익산신문 | |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위치하고 있는 의병장 오하 이규홍 기념비를 소개합니다.
1881년 익산시 팔봉동 석암 관동 마을에서 태어난 오하 이규홍 의병장은 1905년 을사늑약과 군대 해산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이르자 뜻있는 동지 박이환, 문형모와 함께 의병 창의라는 거의를 맹약하고,1906년에서 1907년 10월까지 거사준비를 하였습니다.
1907년 11월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257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11월 15일 고산 가금리에서 적과 첫 접전을 벌여 29명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 후 진안, 장수, 용담 등지에서도 적과 접전하여 적 44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장비, 조급하게 마련된 무기에 훈련되지 않은 의병은 적의 의병대 소탕전으로 전력이 크게 쇠퇴하였고, 추운 겨울 더욱 고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08년 4월 21일 이규홍 의병장은 대전시 동구에 있는 식장산 장군 바위 아래서 비참한 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의병 해산을 선언하였으며 당시의 심정이 오하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칼을 던지고 빈산에 앉아 있으니 흐르는 눈물이 전의(傳衣)를 적신다. 저 두견새도 나의 마음을 알아서 불여귀의 슬픈 마음을 함께 울어주네”
이후, 국내에서 투쟁의 한계를 느낀 그는 1918년 5월 상해로 망명하여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고, 1921년 6월 국내로 돌아와 활동을 하였으나 1924년 2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으로 인해 1928년 별세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2013년 5월 오하 이규홍 의병장 기념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여 보훈정신 함양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위치 : 전북 익산시 석왕동 산 7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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