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정성수 시인 | | ⓒ 익산신문 | 효(孝)는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의무적 규범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도리다. 그럼에도 요즘 효행심이 날로 퇴색해 간다고 걱정들을 한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다. 효는 내림이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이를 보고 자란 자식은 부모인 내게 효도를 한다.
지난해 9월 익산시는 모현도서관에서 ‘효 문화도시 조성 방향 모색을 위한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익산 효 문화 만들기 비전’과 ‘고령화 친화 도시로서의 익산’이란 주제로 효 문화 도시 조정 전략을 폈다.
주제 선택은 이해가 되었지만 강연 내용은 원론적으로 그쳐 아쉬움이 있었다. 당일 참여한 사람 중에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효는 아랫사람이 부모나 조부모 등 윗분들에게 하는 것임으로 젊은이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효 교육이나 효 문화 도시 조성은 자칫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 문화 도시 조성을 전개해야 할 것인지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효 문화 도시 조성을 위한 분위기 확산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초·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효행심에 대한 인식 제고다.
부모와 함께 하는 효행 글짓기 대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부모님 얼굴 그리기, 효 웅변 및 효 서예 대회, 부모와 함께 노래 부르기 또는 춤추기, 조손 결연 맺기 등이 있다.
둘째, 효 문화 도시 조성으로 시민들 사이에 위화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일 배포한 강연 교재 19쪽에 ‘익산의 효 문화 인물 분석 자료’에는 누락된 성 씨가 있었다. 또한 21쪽 ‘익산시 효 관련 유형문화 (36곳)’도 마찬가지다.
이런 자료를 배포할 경우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불만의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마을 간 시민 간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효 마을 지정이나 효에 관한 고서, 병풍, 액자, 편액, 편지글 등을 사료나 자료로 지정할 경우에는 고증을 철저히 거쳐야 한다. 이는 한 번 결정이 되면 취소나 변경이 어렵고 때에 따라서는 분쟁이나 문제의 소지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기록물이 빈약하거나 구전으로 내려오는 효행을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서적 또는 간행물로 제작할 경우는 전문적인 문인이나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위촉·위탁을 해야 한다.
글은 한줄 또는 문장 하나가 내용을 선명하게 하기도 하고 내용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문서 번역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자는 획수 하나, 점 하나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문서들은 초서체가 많아 자칫 오역이나 오독을 할 수 있다. 번역은 한 사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가 위원이나 검증 위원을 둬 제대로 됐는지 확인 또는 점검해야 한다.
다섯째, 효 문화 도시 조성을 위한 추진단이나 협의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담당 직원들만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고 처리하는 데는 업무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협조는 일의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나아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올 상반기에 용동면 대조리 비야마을 ‘효부 동래정씨’와 화실리 고창마을 ‘이보할지’ 안내판과 입간판을 설치하고 효행마을로 지정·운영한다는 소식이다.
이와 함께 효 문화도시 조성 기반구축을 위해 용역도 추진한다고 하니 대단히 고무적이다.
효는 우리 조상에 대한 섬김의 전통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효 문화 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는 익산시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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