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전북극동방송 강주연 방송부장 | | ⓒ 익산신문 | 어항을 수놓는 알록달록 열대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8마리의 열대어를 집으로 데려왔다. 처음에는 열대어라는 생명체를 바라보며 내심 아기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되길 바랐고, 상쾌한 가습효과를 기대했다.
물고기들이 잘 살아가라고 수초도 심어주고, 여과기에 산소발생기, 조명, 그리고 물고기 놀이터까지 예쁘게 단장한 어항은 보기만 해도 좋았고, 화려한 색감과 살랑살랑 물속을 누비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아름다웠던 열대어 어항은 점점 변해갔다. 물고기 가족은 빠른 속도로 식구들이 늘어갔고, 이끼가 끼기 시작했으며, 수초에서 떨어진 잎들은 둥둥 떠다녔고, 바닥에는 배설물이 소복이 쌓여갔다. 이제 물고기 어항은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관리 소홀로 인해 물고기들이 병에 걸렸다.
결국 몇 마리씩 죽어 나가기 시작하며 어쩔 수 없이 청소를 결심했다. 큰 어항이라 이동은 불가능했고, 어항을 직접 닦는 것도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어디서 듣기로 환수가 중요하다고 해 어항의 물을 반쯤 버리고 새로운 물을 넣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다시 문제들은 반복됐고 물고기들이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
귀찮다는 핑계로 계속 환수만 해줬는데, 결국 근본적인 오염물질을 제거하지 않는 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닥에 깊이 스며든 배설물과 찌꺼기와 오물들이 그대로인데 물만 바꿔주면 무슨 소용이었을까 싶어 게으른 합리화가 부끄러웠다.
학창 시절 배웠던 한자성어 중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은 것이 있다면 바로 ‘동족방뇨(凍足放尿)’이다.
우리 속담 ‘언 발에 오줌 누기’가 한자성어로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나 보다. 얼어있는 발에 오줌을 누어 잠시는 따뜻해질 수 있지만 결국 다시 얼어붙어 역효과를 낸다는 교훈.
사춘기 소녀에겐 그저 웃기고 민망한 한자성어였다. 하지만 그냥 웃고 넘기기엔 우리 삶 속에서 벌어지는 방뇨(放尿)의 참사가 얼마나 많은가 싶다.
그뿐인가? 아랫돌을 꺼내 윗돌을 괸다는 하석상대(下石上臺)도 얼마나 웃긴 모양인가. 아랫돌을 꺼내면 무너지고 말 것을 알면서도 위로 쌓는 모습. 우리가 의외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의 행위들을 자행하고 살아간다는 것.
찌꺼기들을 처리 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 바꿔 놓으며 깨끗한 척, 괜찮은 척, 문제가 없는 척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열대어 어항을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이 생각났다. 어항을 청소하듯 우리의 마음도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귀찮다고, 괜찮을 것이라고 핑계 삼으며 모른 척하며 살아왔다.
내면에 쌓인 찌꺼기, 더러운 생각과 배설된 욕망, 케케묵은 침전물과 해묵은 상처, 이런 감정들이 남아있는데 보여지는 것만 깨끗하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 건강한 마음일까 생각한다.
도널드 앨트먼의 ‘하루 한 번 마음청소’에서 말하기를 ‘과거에 생긴 감정의 찌꺼기는 다락방에 쌓여 있는 오래된 물품이 들어 있는 상자’처럼 이로 인해 ‘무력감과 배신감, 슬픔, 불행’을 느끼고 방어적인 태도로 인해 ‘훌륭하고 좋은 일들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선 ‘이 다락방에 있는 상자를 얼마나 깨끗이 정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비워야 채워진다는 인생의 진리가 수긍된다. 또한, 마음의 근심은 일만 병의 시작이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비워내고 청소해야하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마음 청소 중 한 가지 비법은 ‘걱정과 근심을 다음 날로 미루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한다.
꽉 차있는 우리의 마음, 이제는 분리수거와 대청소로 정리를 하고, 새로운 것들, 양질의 것들,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야겠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르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고 말했다.
우리의 마음을 관리하고 지켜갈 때,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 될 것이다.
집착하고 쌓아뒀던 마음의 찌꺼기들을 이제는 방출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마음 청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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