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전북도청 서기관 | | ⓒ 익산신문 |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교동)에 위치한 한국고전번역원 전주분원에서 논어 읽는 청아한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온다. 공무원들이 퇴근 후 모여 논어를 성독하는 광경이다.
전북도청에서도 매월 한 번씩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의 날’을 운영한다.
‘학이시습’이란 고사는 논어의 학이편 처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풀이된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는 뜻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한국과 일본과의 유대를 말할 때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정·재계 인사 3,000명 앞에서도 이 말을 언급하며 양국의 우호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웃도 이웃 나름이지 뻔뻔스러운 역사관을 가진 아베 신조의 일본은 중국에게도 덕이 있는 이웃은 아닐 텐데 앞으로 그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여러 구절이 나온다. ‘좋은 이웃은 큰 축복이고 나쁜 이웃은 큰 불행’이란 서양 격언도 있다.
‘이웃 사람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우리의 금언이다.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을 더 얹어 이웃을 산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은 비유를 통해 이웃의 가치를 잘 표현한다.
그러나 德不孤 必有隣(덕불고 필유린)은 천만금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이웃을 얻을 수가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오래 전에 도내 일간지에서 ‘단체장과 의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 중에 “아웃사이더 또는 변칙적인 공무원이 많았으면 합니다. 문제를 말하는 공무원이 먹고 살거리를 만들 수 있어서입니다.”라는 구절이 눈에 번뜩 들어왔다.
그렇다. 이제 공무원을 닦달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공무원 개개인이 철학을 가지고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으로 도민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갈수록 낙후되어 가는 전북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런데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꼴불견을 목격할 때가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으로 특권을 양손에 쥔 양 권위를 내세우는 행태이다. 상대방 인격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이다. 교묘하게 이권에 개입하고 청탁을 일삼는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자들의 공통점이다.
권위에 눌려 당장 눈앞에서 받아들이고 존경하는 척 머리를 조아릴지 몰라도 돌아서서도 존경할까.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권력을 휘두른 자에게는 그 대가가 분명 부메랑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이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 회자 된 지 오래이지 않던가. 정치 권력은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의 진(秦) 제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저절로 생겨 외롭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덕이 없는 사람은 인위적으로 세를 키우려고 한다.
외롭지 않은 것은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이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이고, 덕은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이다. ‘덕불고 필유린’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덕은 거드름과 권위와 강압이 아닌 어진 마음과 곧은 마음이다.
공자가 외롭지 않았던 것은 덕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제자들이 모이고 따른 것이다. 굳이 인위적으로 세를 형성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에서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한때 남의 질시를 받아도 결국 정성이 통해 동참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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